다시 찾아온 축구의 봄, 본질은 축구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9-19 05:21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벤투호 1기의 훈풍이 K리그로 불어왔다. 15일 울산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K리그1 28라운드 '동해안더비' 울산-포항전엔 1만3224명의 올시즌 최다 관중이 몰렸다. 인천, 부산, 대전도 올시즌 최다 관중을 찍었다.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바야흐로 축구의 봄이 찾아왔다.

시작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손흥민(토트넘)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황의조(감바 오사카) 등 스타 파워에 매경기 펼쳐진 명승부가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다음 주자는 A대표팀이었다. 아시안게임 효과는 폭발적이었다. 축구를 멀리했던 여성팬들과 소녀팬들까지 가세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데뷔전부터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며 기대감을 줬다. 9월 펼쳐진 두번의 A매치는 만원사례를 기록했다.

대표팀이 만든 열기는 K리그로 이어졌다. 전주, 울산, 인천, 순천, 서울, 춘천에서 열린 28라운드 6경기에서 총 4만9655명의 구름관중이 몰렸다. 궂은 날씨에도 평균 8275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27라운드(4203명)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시즌 최다 관중수를 찍은 구단도 네 팀이나 됐다. K리그1에선 울산(1만3224명), 인천(7282명), K리그2에선 부산(4472명), 대전(2682명)이다. 온라인 포털 중계 동시접속자수(평균 2만3417명)는 이번 시즌 전체 평균(1만2648명)의 두배에 달했다. 인천-수원전은 무려 4만4092명이 지켜봤다. 2017시즌과 2018시즌 통틀어 단일 경기 최다 평균 동접자 기록이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다.

사실 걱정도 있었다. 언급한대로 축구 인기의 시작은 대표팀이었다. 23세 이하 대표팀의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벤투호의 달라진 경기력이 불을 지폈다. 이런 대표팀의 중심은 모두 해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폭발적인 화제를 낳았던 오픈 트레이닝데이 행사에서도 팬들의 환호는 '해외파' 손흥민 이승우 황의조 황희찬(함부르크) 기성용(뉴캐슬)에 집중됐다. 이승우는 소녀팬들의 새로운 아이돌로 떠올랐다. 이들이 없는 K리그에도 관심을 보일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최근 축구 인기는 축구 자체에 대한 관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과거 K리그는 두번의 황금기를 맞았다. 첫번째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등장한 이동국-안정환-고종수의 '트로이카 시대'였다. 잘생긴 얼굴과 매력, 실력까지 두루 갖춘 삼총사의 등장과 함께 K리그는 바아흐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소녀팬들이 축구장을 찾았고, 이들이 촉발시킨 인기는 가히 슈퍼 태풍급이었다. 두번째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였다. 한-일월드컵 4강 신화로 이어진 축구붐은 K리그에서 꽃을 피웠다. 매 경기 구름관중이 몰렸다.

최근 축구의 인기는 첫번째 보다는 두번째 황금기를 더 닮았다. 눈에 띄는 스타가 없음에도 팬들이 늘었다. 물론 김진야(인천) 김문환(부산) 황인범(아산) 등 아시안게임을 통해 등장한 젊은 스타들을 보기 위한 걸음도 있지만, 그 보다 더 큰 것은 축구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다. 아시안게임과 평가전을 통해 만끽한 축구의 재미를 K리그에서도 느껴보기 위해서다. 폭발력에서는 아직 이전 두번의 황금기에 미치지 못하지만, 팬들이 축구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점 만큼은 고무적이다.

그래서 축구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국 본질은 축구다. 아무리 좋은 마케팅이라도 축구 자체의 재미를 이길 수 없다. 경기가 재미 없으면 팬들이 오지 않는다. 사실 2002년 찾아온 최고의 기회를 날린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축구인들 스스로였다. 현장의 지도자들은 매 경기 승패에 급급했고, 선수들도 지나친 승부욕으로 팬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심판들도 어설픈 판정으로 팬들을 내몰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고비마다 실기를 반복했다. 결국 모처럼 찾아온 관중들에게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결과는 또 한번의 암흑기였다.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축구인들이 조금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할 때다. 지도자들은 재밌는 축구를 강조할 때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할 때다. 심판도 더 정확한 판정을 위해 사심을 내려놓고, 한발 더 뛰어야 한다. 연맹도 어설픈 마케팅에 집중하는 대신 각 팀들이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 찾아온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있다. 팬들을 열광시킬 만한 최고의 경기 만이 힘들게 찾아온 축구의 봄을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명약이 될 것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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