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벤투호의 첫 경기가 승리로 장식된 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만난 베테랑 기성용(29·뉴캐슬)의 표정은 차분했다. 신임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의 한국 축구 A대표팀은 7일 북중미 코스타리카를 2대0으로 제압했다. 기성용은 이 경기를 통해 대표팀 캡틴 역할을 후배이자 한국축구의 최고 스타 손흥민(토트넘)에게 넘겼다. 코스타리카전서 기성용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 전반 45분만 뛰고 교체됐다. 그는 전반 경기력으로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해보였다. 자로잰듯한 낮고 빠른 좌우 크로스로 여러 차례 결정적인 슈팅 찬스를 만들어냈다. 손흥민은 기성용의 '택배 크로스'에 '엄지척'을 보내기도 했다.
기성용의 이 코멘트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핵심을 찔렀다. 태극전사들은 새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4년 전 큰 기대를 모았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 때도 상황은 비슷하다. 당시 파라과이와의 데뷔전에서 태극전사들은 김민우 남태희의 연속골로 2대0 승리했다. 2년 동안 온갖 찬사를 받았던 슈틸리케 감독은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고전 끝에 2017년 6월 성적부진으로 경질됐다.
기성용은 하루 이틀 태극마크를 단게 아니다. 거의 막내로 허정무 감독이 이끈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나가 원정 16강 달성에 힘을 보탰다. 그때 빅스타 박지성 이영표 박주영 이청용 등과 함께 했다. 4년전 브라질월드컵에선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경험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주장으로 참여했던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을 극적으로 제압했지만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대회전부터 A대표팀에 쏟아진 맹비난과 부상으로 기성용의 심적 고통이 컸다. 그는 볼리비아와의 평가전(6월7일)을 마치고 작심한 듯 축구팬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호소의 요지는 "더이상 잘 하겠다는 거짓말을 못 하겠다. 결과에 대해 비난을 받겠다. 그러니 제발 지금은 비난 보다 응원을 해달라"였다.
기성용은 주장 완장의 부담에서 벗어났다. 벤투 감독과 면담을 했고 손흥민을 추천했다. 그는 "주장으로 내 할 일은 다했다. 앞으로 4년을 보면 흥민이가 하는 게 맞다. 주장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영향력있는 선수가 하는 게 맞다"고 명쾌하게 말했다. 향후 국가대표로서의 거취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기성용은 러시아월드컵 후 대표 은퇴 고민을 얘기했다. 그는 "벤투 감독님이 같이 가자고 했다. 나 역시 팀이 필요로 한다면 아시안컵(내년 1월)까지는 선수들과 같이 가는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출발을 한 벤투호의 현재에 대해선 긍정적이지만 미래에 대해 섣부른 속단을 내리지 않았다. 손흥민과 이승우는 "벤투 감독과 포르투갈 출신 코치진(4명)이 준비한 훈련 프로그램이 매우 만족스럽다.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도 붙잡고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기성용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감독님이 특별한 걸 원하지 않는다. 공격할 때 빠르게 세밀하게 하는 걸 원한다. 선수들이 이해하는데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면서 "오늘 롱패스는 내가 하던 플레이다. 측면에서 주로 공격작업이 이뤄진 건 현대축구의 전술 흐름이다"고 했다. 또 그는 "앞으로 많은 경기를 한다. 이 경기를 이겼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벤투호는 11일 남미의 강호 칠레와 두번째 친선경기를 갖는다. 칠레의 기본 전력은 코스타리카 보다 강하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