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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의 발품스토리]이강인 관찰기, 빨리먹는 밥이 체하는 법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8-08-02 11:30



[킹파워스타디움(영국 레스터)=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빨리 먹는 밥은 체하는 법이다.

이강인(17·발렌시아 메스타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선수들과 직접 부딪혔다. 19분.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능성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찬사를 보낼 수도 있었다. 또한 아쉬움도 느꼈다.

결론을 내렸다. 천천히, 차근차근.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만 17세기 때문에.

1일 오후(현지시각) 영국 레스터로 향했다. 발렌시아는 EPL 레스터시티와 격돌할 예정이었다. 1군 프리시즌에 합류해있는 이강인도 영국으로 따라왔다. 언제든지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상태였다.

이강인의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하루 전 킹파워스타디움에서 훈련하는 모습이 올라와있었다. 레스터시티를 상대로 뛸 수 있겠구나라는 촉이 왔다.

경기 시작 1시간 30분 전. 발렌시아 구단 버스가 들어왔다. 선수들이 내렸다. 이강인도 있었다. 눈빛이 매서웠다. 몸도 성장해있었다. 단단했다. 예전 방송프로그램에서 봤던 꼬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출전명단이 나왔다. 'KANGIN'은 벤치 명단에 있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EPL팀을 상대한다. 17세 어린 선수의 선발 출전을 기대하는 것은 크나큰 욕심이었다. '묵묵'하게 경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경기 전 워밍업 그룹에 이강인이 없었다. 하프타임에도 이강인이 없었다. 한국 취재진들은 술렁였다. 결장이 아니냐며 걱정했다. 후반 15분 이강인이 몸을 풀러 나왔다. 한국 취재진들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이강인이 개인기로 레스터시티 선수들을 제치고 있다.

후반 26분 이강인이 들어갔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였다. 19분을 뛰었다. 잘했다. 기본기는 탄탄했다. 볼을 잡는 것부터 남달랐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발에 접착제가 붙어있는 듯 했다. 후반 43분에는 멋진 개인기로 레스터시티 선수들을 제쳤다. 탈압박 능력이 좋았다.

아쉬움도 있었다. 교체 투입 후 경기의 템포를 따라잡는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다. 그라운드 상태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듯 했다. 수비 시 위치 선정도 애매했다. 패스를 찔러주는 데서도 잔 실수도 있었다.

잘했다. 그리고 아쉽다. 긍정과 부정이 교차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만 17세라는 기준에서 봤을 때다. 만 17세임에도 불구하고 잘했고 가능성도 대단함을 느꼈다. 그리고 만 17세 선수이기에 나올 수 밖에 없는 아쉬움도 있었다.

만약 이 전제조건을 뗀다면? 아직은 여러측면에서 가다듬어야 했다. 스페인 언론의 평가대로 이강인은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이강인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17세의 이강인보다는 18세의 이강인이, 그리고 19세, 20세의 이강인이 더욱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점을 보완할 것이 분명했다. 피지컬도 더 키울, 아니 더 클 것이다. 피지컬이 성장함에 따라 근력도 좋아질 것이다. 순간 스피드도 붙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발렌시아는 올 시즌 이강인을 2군 무대에서 뛰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확실하게 뛸 수 있는 무대다. 경기 경험도 분명 쌓일 수 밖에 없다.

전제 조건은 단 하나. '시간'이다. 시간만 준다면 발전할 수 밖에 없는 선수가 바로 이강인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김학범 감독이 31일 오후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파주=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8.07.31/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나서지 않은 것은 잘된 일이다. 우선 이강인은 '성인 경기' 경험이 많지 않다. 2017~2018시즌 2군 경기를 조금 뛰기는 했지만 한 시즌을 온전하게 소화한 것은 아니다. 21세 팀들의 대회인 툴롱컵을 나서기는 했다. 그러나 툴롱컵 역시 이벤트성 대회에 가깝다. 뭔가 결론을 내야 하는 대회는 아니다.

반면 아시안게임은 '사생결단'의 무대다. 그것도 23세 선수들이 주축이다. 23세 이상의 와일드카드도 있다. 이런 선수들을 상대한다면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아시안게임 엔트리는 20명밖에 없다. 모든 선수들이 나서야 한다. 성인무대 경험이 적은 이강인으로서는 어려운 대회가 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아시아 하위권 선수들은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열정이 과한 나머지 이강인에게 거칠게 달려들 수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성장의 폭이 큰 이강인에게는 아시안게임이 '독'이 될 수도 있다.

급할 것은 없다. 이강인은 아직 17세다. 2년 후 도쿄올림픽, 4년 후 아시안게임도 있다. 그 다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는 와일드카드로 나설 수도 있다. 시간은 충분하다.

경기 후 이강인을 만나러 믹스트존으로 향했다. 인터뷰를 할 수 있냐고 정중히 물었다. 이강인은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을 흐렸다. 미디어담당자가 나왔다. 한국 취재진임을 확인했다. 잠시 이강인을 데리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미안하다. 아직 어린 선수다. 팀에서도 보호하고 있다. 18세가 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 취재진들 모두 수긍했다. "괜찮다"고 했다. 아직은 성장이 더 중요한 나이였다. 현장 취재진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강인은 버스로 향하면서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면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이강인은 아직 뜸을 들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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