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후 잠적한 '승격공신', 경남에 무슨 일이?

임정택 기자

기사입력 2018-01-18 14:54 | 최종수정 2018-01-18 20:47


경남FC '승격공신'이 꿈에 그리던 클래식 무대를 밟기도 전, 팀을 떠난다.

지난 시즌 '승격 반전극'을 썼던 경남FC. 팀을 지탱했던 두 축은 김종부 감독과 조기호 대표였다. '폐허'였던 경남FC에서 만난 두 사람. 끈끈한 신뢰를 바탕으로 경남FC를 재건해 승격까지 일궜다. 하지만 2018년 K리그 클래식 준비에 한창 열 올려야 할 '승격공신' 조 대표가 18일 사표를 던진 뒤 돌연 잠적했다.


18일 돌연 사표를 던지고 잠적한 경남의 승격공신 조기호 대표.
도대체 경남FC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클래식 승격을 확정지었던 지난해 10월 이후 경남FC는 경남도청(이하 경남도), 보다 구체적으로는 구단주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의 압박에 시달려왔다. 시작은 지난해 11월부터였다. 승격 확정 후 한창 시끌벅적해야 할 구단이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향후 구단 운영에 대한 어떤 질문을 해도 속 시원하게 답해주지 않았다. 당시 김종부 감독 재계약 만료가 임박해 관련 질문을 했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경남도에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구단에 문의하라"는 말 뿐이었다.

취재 끝에 알려진 사실. 경남도는 김 감독의 희망 연봉액이 높다는 이유로 반려를 해왔고, 계약기간 역시 1년으로 '승격 장군'에 걸맞지 않는 조건을 제시했던 것. 김 감독 재계약 지연건에 대한 본지 보도<스포츠조선 2017년 12월 7일 보도>가 나오고 주말 포함 4일 뒤에야 재계약을 했다. 1년에서 1+1년으로 연장 옵션을 추가한 정도로 마무리됐다.

김 감독 재계약 지연건과 동시에 '축구인 A씨 내정설'도 들려왔다. 이 A씨는 한 대행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인사. 스카우트 부장, 사무국장 등 다양한 직위와 연결돼 있었다. A씨 역시 경남FC 사무국을 찾는 등 적극 행보를 보였다. A씨는 스포츠조선을 통해 경남FC 합류 가능성을 극구 부인했다.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오른쪽)이 브라질 출신 외국인선수 네게바와 악수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구단주인 한 대행이 직접 이야기했다. 18일 경남도 기자간담회에서 한 대행은 '낙하산 인사 의혹'에 대해 "(조기호 대표에게)그 분의 경험을 경남FC에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검토해보라고 한 적이 있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며 "해당 인물 본인에게는 얘기하지 않은 사안이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당사자 A씨와 일절 상의도 없이 순전 한 대행의 판단으로 조 대표에게 A씨의 경험을 활용해보라고 했다는 얘기다. A씨는 프로 감독 출신으로 경남FC도 이끈 적 있는 지도자다. 그렇다면 경남도가 왜 김 감독에게 1년 제안을 했는지에 대한 퍼즐이 얼추 맞춰진다. 경남도 사정에 밝은 복수의 관계자는 "결국 클래식에서 경남FC 성적이 저조하면 김 감독을 내치고 A씨를 앉히겠다는 밑그림"이라고 했다. A씨는 본지에 "경남FC에 가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나는 유소년 클럽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자신의 축구 인생을 걸고 맹세했다. 만약 조 대표가 한 대행의 제안에 곧바로 수긍했다면, 한 대행은 A씨에게 "유소년 클럽 차리지 말라. 내가 말해뒀으니 경남FC로 가시라"고 했을까? 한 대행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이런 그림이 나온다.


김 감독 재계약과 그 속에 숨은 A씨 내정설의 낌새를 느낀 몇몇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하자 한 대행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2017년 12월 중앙정부 방침에 따른 출자출연 전기관 채용비리 관련 경남FC 감사를 했다. 그리고 지난 12일부터 재차 경남FC 감사를 시작했다. 회계감사라고 하는데 감사의 발단이 흥미롭다. 한 대행은 기자간담회서 "500만원이 없어 전지훈련 격려를 못 간다는 (조 대표의)말에 구단주 입장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회계감사의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70억원에서 올해 90억원으로 예산을 증액했는데 500만원이 없어 격려 못 간다는 말을 들었으니 구단주 입장에서 의아할 만은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계감사를 할 게 아니라 자초지종부터 듣는 게 일반적인 반응. 실제 당시 취재 결과 조 대표 말의 의미는 '자신이 갔을 때 선수단이 부담을 느낄 것에 대한 우려, 또 전지훈련에 대표가 오가며 돈을 쓰기 보단 다른 곳에 쓰는 게 적절하다 생각해서'에 가까웠다. 500만원은 그 과정에서 나온 '너스레' 정도 였다. 그러나 한 대행에겐 조 대표의 진의는 중요치 않았다. 한 대행은 18일 오전 면담 요청하러 온 조 대표를 모욕적인 방식으로 문전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을 겪은 직후 조 대표는 사표를 꺼냈다.


경남FC의 구단주인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

그야말로 불통이다. 2개월 간 경남도 체육지원과는 "권한대행의 뜻이다" "구단에 물어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목줄 잡힌 구단은 불똥이 튈까 말이 없었다. 권한대행 비서실에 문의했더니 서면질의도 어렵고 관련 사안은 체육지원과에서 답해주는 게 맞다며 답변을 피했다. 문화체육국장실은 연락 취할 때마다 회의중이었다. 연락처와 소속을 직원에게 남겨도 돌아오는 연락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대행은 "왜곡보도에 대해 대표가 정확한 사실을 밝혀야 함에도 전혀 해명하지 않았다. 대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구단만 입막음하면 모든 게 감춰질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결국 '승격공신' 조 대표는 사표를 꺼내 들었다. 한 대행은 "(조 대표 사표수리에 대해) 아직 결정을 못 내렸다. 당초 조 대표를 경질하겠다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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