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안컵 신태용호, '이명주 시프트' 시험대 오른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7-12-05 18:14


◇신태용 A대표팀 감독이 2017년 동아시안컵에서 '이명주 시프트'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당시 대표팀 코치였던 신 감독이 이명주와 훈련 중 대화를 나누며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파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11월 A매치 2연전 MVP(최우수선수)는 이근호(강원FC)였다. 특유의 빠른 발과 폭넓은 활동량보다 주목 받은 것은 '투혼'이었다. 공수 전반에 걸쳐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신태용호의 투지를 깨웠다. "이근호처럼 뛰어야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 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2017년 동아시안컵에서 본선 담금질을 펼치는 신태용 A대표팀 감독이 새로운 무기를 내놓는다.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고 테크니션 중 한 명으로 발돋움한 이명주(FC서울)가 선봉에 선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의 유력 주자로 꼽혔으나 고배를 마신 채 절치부심했던 이명주는 이번 동아시안컵을 통해 '반전'을 꿈꾸고 있다.


왜 이명주인가?

이명주는 지난 2일과 5일 열린 고려대와의 두 차례 연습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섰다. 역할은 최전방 원톱을 돕는 2선 공격수였다. 하지만 경기 중에는 최전방 공격수와 거의 나란히 서는 '투톱'의 역할을 맡았다. 주로 2선 내지 중앙 미드필더나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부여 받았던 이전 A매치와는 다른 포석이었다. 신 감독은 고려대전을 앞두고 진행된 팀 훈련에서 이명주에게 "(볼을) 내려오지 말고 전진하면서 받으라"는 주문을 수 차례 했다. 신 감독의 지시대로 이명주의 움직임은 주로 전방에 고정됐다.

이명주는 5일 고려대전에서 전반 45분을 뛰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진성욱(제주)의 선제골을 도운 것 뿐만 아니라 2대1 패스와 침투를 통해 상대 수비라인을 깨고 들어가는 장면을 수 차례 연출했다. 수비시에도 압박에 적극적으로 가세하면서 패스 줄기를 차단함과 동시에 역습의 선봉에 서면서 원활한 공격 흐름을 만들어갔다. 지난달 27일부터 울산 소집훈련을 펼치며 두 차례 연습경기를 치른 신 감독은 이명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돌파구를 찾는 공격법에 합격점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명주 시프트, 과연 통할까?

이명주는 지난 7월 FC서울에 입단하며 2014년 포항에서 알 아인(아랍에미리트·UAE)으로 이적한 지 3년 만에 국내로 복귀했다. K리그 클래식에서 13경기에 출전해 2골-1도움에 그쳤으나 복귀 직후 부상으로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던 점과 시즌 막판 컨디션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동아시안컵에 나서는 신태용호에 승선했다.

A매치 데뷔 초창기 이후 대표팀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이명주가 과연 동아시안컵에서 신 감독의 기대를 충족시킬지에 대한 의견은 반반으로 갈린다. 포항, 알 아인, FC서울 등을 거치면서 쌓은 경험과 최근 컨디션이 상승세라는 점은 기대감을 키운다. 하지만 1m75의 체격과 신태용호 못지 않게 압박을 앞세울 중국, 북한, 일본을 상대로 존재감을 보여주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명주는 절정기였던 포항 시절 현재 신태용호에서 부여 받은 임무와 비슷한 형태의 활약상을 보여줬다. 김승대 손준호 등과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라인을 절묘하게 깨며 찬스를 만드는 소위 '라인 브레이킹'에 특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격에 좀 더 비중을 두는 신 감독의 해법이 이명주의 역량을 대표팀 내에서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이 때문이다. 이런 공격 형태가 유럽파가 가세하는 3월 이후 본선 준비에서도 새로운 공격 옵션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신태용호는 또 하나의 무기를 안게 된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이명주는 독기를 품었다

사실 이명주에게 A대표팀은 아픔이다. 2014년 K리그 최다 연속 공격포인트(4골-6도움)을 쓰면서 브라질월드컵 본선 승선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결국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이후 2015년 호주아시안컵 최종명단에서도 배제되는 등 유독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내년 1월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이명주에겐 사실상 국내파 최종 시험무대인 이번 동아시안컵을 바라보는 눈빛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명주는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나 패스 등에서 감독님이 믿음을 주시고 있다. 사실 나도 오랜만에 뛰어보는 자리라 어색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포항 시절 경험을 해본 바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다가올 동아시안컵에 대해선 "중국과 일본, 북한 모두 기술이 좋은 팀이다. 나는 수비적인 부분에서 좀 더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상 뒤 심적으로 위축된 감이 있었으나 많이 회복이 됐다"며 "모든 선수들이 본선을 준비하고 있다. 내게는 두 번째 도전이다. 차두리 코치님이 '욕심을 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 새겨듣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 욕심이 다소 부족했던 감이 있다. 이번에는 (러시아월드컵에) 나서보고 싶다. 대표팀 분위기에 적응하는게 우선"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성공과 실패는 한끗차이다. A대표팀에서 눈물을 흘려온 이명주는 신 감독의 믿음 속에 동아시안컵에서의 재기를 노리고 있다.


울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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