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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수원과 강원의 K리그 클래식 27라운드는 주말 K리그 가운데 최고 관심매치 중 하나였다.
A대표팀 소집(21일)을 앞두고 열린 가운데 신태용 감독도 경기장을 찾아 매의 눈으로 관찰했다.
이런 관심매치에서 승패(강원 3대2 승)를 떠나 가장 눈길을 끈 이들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양팀의 주장이자 신태용호의 중심 베테랑이다.
선배 노릇 잘 한 이는 염기훈(34·수원)과 이근호(32·강원)다. 염기훈은 2015년 6월 러시아월드컵 2차예선 이후 2년여 만에 태극마크를 단다. 이근호는 울리 슈틸리케 전임 감독 말기에 재발탁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보이면서 신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그들에게 이번 러시아월드컵은 선수생애 마지막 기회다. 그 만큼 절실해서인지, 산전수전 다 겪었기에 요령을 잘 알아서인지 전혀 부족함 없는 활약으로 신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염기훈은 작년까지 2년 연속 도움왕의 타이틀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김건희와 함께 투톱 공격수로 나선 염기훈은 득점 욕심을 내기보다 그의 장점인 이타적인 플레이를 제대로 살렸다.
2선에서 공격에 적극 가담하는 산토스와 김민우의 입맛에 척척 달라붙은 패스 솜씨는 신 감독 보는 앞이라고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좌-우, 중앙 가릴 것없이 패스 루트를 창조하기 위해 종횡무진 누비는 그의 활약은 '조나탄이 있었다면…'하는 아쉬움을 더욱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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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로 끌려가던 전반 41분 산토스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는 장면은 '역시! 염기훈'이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페널티에어리어(PA) 왼쪽 모서리 지점에서 공을 잡은 산토스의 중거리 대각선 슈팅도 좋았지만 염기훈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염기훈은 산토스에게 공을 준 뒤 마치 리턴패스를 받을 것처럼 아크 지역으로 달려들어가며 상대 수비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 사이 산토스는 패스를 줄 것처럼 속임수 동작을 하다가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을 수 있었다.
후반 28분 김민우의 두 번째골 도움 역시 탄성감이었다. PA 상단에서 기회를 노리다가 김민우가 돌아들어가는 것을 보고 수비수들 사이를 뚫으며 문전으로 배달한 침투패스가 일품이었다. 문전 밀집수비를 한방에 무너뜨리는 패스에 김민우는 사실상 노마크 찬스를 맞을 수 있었다. 멀티 도움을 기록한 염기훈(9개)은 도움 1위 윤일록(서울·10개)을 바짝 추격했다.
염기훈이 도우미였다면 이근호는 돌격대장이었다. 수원 문전을 거침없이 돌파하며 수원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장면이 나왔다하면 이근호가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 최전방에서 미드필드 후방까지 커버하는 영역도 넓었지만 나이를 거꾸로 먹었는지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짜릿한 결승골의 다리를 놨다. 후반 34분 PA 모서리 지점에서 튀어오른 공을 놓고 수원 수비수 곽광선과 경합하던 중 페널티킥을 유도했다. 이근호의 볼 컨트롤를 저지하기 위해 곽광선이 킥을 한다는 것이 이근호의 정강이를 걷어차버린 것. 황진성에게 페널티킥을 양보했지만 이근호의 끝까지 저돌적인 자세가 만든 승리였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뽑은 두 베테랑이 각자의 색깔을 제대로 보여준 뒤 신태용호 승선길을 가볍게 했다. 덩달아 선택지가 넓어진 신 감독의 발걸음도 가벼워질 것으로 보인다. 나이만 베테랑이 아니라 물도 오른 베테랑이라 더욱 그렇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