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준의 발롱도르]미친이적시장 속 토트넘의 마이웨이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7-07-18 10:32


ⓒAFPBBNews = News1

토트넘의 여름이 잠잠하다.

수백억대를 넘어 천억원대 선수들이 아무렇지 않게 탄생하는 이 미친이적시장에서 토트넘은 한발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아르헨티나 U-20 대표팀의 수비수 후안 포이스 이적이 임박했다는 정도? 영입은 커녕 그 흔한 루머조차 별로 없다. 오랫동안 원했던 에버턴의 미드필더 로스 바클리의 영입을 노리고 있지만, 이 역시도 이적료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눈여겨 볼 점은 이처럼 조용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물론 팬들 조차 이렇다할 불만이 없다는 점이다. 전력 보강이 되지 않으면 감독 입장에서는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계속해서 공격수 보강에 실패하고 있는 첼시는 안토니오 콩테 감독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라이벌 팬들의 영입 소식을 듣는 팬들 입장에서도 분통이 터진다. 북런던 라이벌 아스널만 봐도 매년 월드클래스 영입을 두고 아르센 벵거 감독과 팬들 사이의 신경전이 펼쳐진다.

토트넘은 이제 유로파리그 출전에 만족하는 그저그런 팀이 아니다. 토트넘은 지난 시즌 포백과 스리백을 오가는 매력적인 축구로 2위를 차지했다. 2015~2016시즌 막판 고비를 넘기지 못했던 모습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올 시즌에도 우승후보 중 하나로 평가를 받는다. 유럽챔피언스리그에도 나서는만큼 두터운 스쿼드는 필수다. 하지만 토트넘의 지갑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포체티노 감독과 팬들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토트넘의 잠잠한 여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니엘 레비 회장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01년부터 토트넘을 이끌고 있는 레비 회장은 협상의 귀재다. 2008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영입을 위해 레비 회장과 협상에 나선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은 "레비 회장과 협상하는 일은 엉덩이 수술을 받는 것보다 고통스럽다"고 했을 정도다. 평소 내성적이지만 다정한 성격으로 알려진 레비 회장은 협상 테이블에서는 냉정한 승부사로 바뀐다. 그의 협상 아래 가레스 베일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사상 첫 1억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했고, 올 여름 맨시티로 떠난 카일 워커가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5300만파운드)가 됐다.


사진캡처=토트넘 트위터
이 같은 냉정함은 구단 운영에서도 이어진다. 토트넘은 선수 한 명에서 주급 10만 파운드를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6년 해리 케인과 재계약을 하며 이 룰은 깨졌지만(물론 케인의 정확한 주급은 공개되지 않았다), 선수단 인건비가 구단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레비 회장의 철학은 토트넘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레비 회장은 일종의 샐러리캡을 적용하며 토트넘을 운용하고 있다. 토트넘은 재정적으로 가장 건전한 구단 중 하나다.

여기에 토트넘이 잠잠한 여름을 보내는 답이 있다. 지금 선수단을 업그레이드할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선수단의 주급 체계를 깰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토트넘은 앞서 언급한데로 포체티노 감독이 부임한 이래 꾸준히 발전했다. 지금 토트넘의 베스트11은 어느 팀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다. 어느 포지션을 보더라도 EPL 최고 수준이다. 당연히 이 보다 뛰어난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 수 밖에 없다. 여기에 토트넘은 새로운 홈구장을 건설 중이다. 8억파운드에 가까운 돈이 소요된다.

토트넘의 올 여름 과제는 영입이 아니라 주축들을 지키는 것이다. 물론 토트넘 선수들에 대한 러브콜이 끊이질 않고 있다. 워커는 이미 떠났고, 에릭 다이어는 맨유의 집요한 구애를 받고 있다. 기존의 베스트11을 지키길 원하는 레비 회장이 워커의 이적을 허락한 이유는 세 가지다. 일단 이적료가 천문학적이었고, 두번째는 워커를 대신할 키에런 트리피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주급의 불만을 갖고 있던 워커는 팀 분위기를 깰 수 있는 잠재적 불안요소였다. 하지만 다이어의 경우는 다르다. 다이어는 포백과 스리백을 오가는 포체티노식 전술의 핵심이다. 그를 대신할 자원이 전무하다. 여기에 현재 다이어의 주급은 6만파운드로 토트넘이 설득할 여지가 남아있다. 레비 회장은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점진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주급을 상승시켜주며 선수들의 불만을 잠재워왔다.


ⓒAFPBBNews = News1

물론 토트넘의 이적시장이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토트넘은 또 한번 선수단 정리에 나설 예정이다. 임대 중인 페데리코 파지오와 클린튼 은지가 각각 AS로마와 마르세유로 이적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3000만파운드에 토트넘 유니폼을 입었던 무사 시소코도 방출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워커의 이적료로 5300만파운드를 손에 쥔 토트넘은 백업 선수 영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바클리, 본머스의 조쉬 킹 등이 물망에 올라있다. U-20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조쉬 오누마, 카일 워커-피터스 등을 비롯해 잉글랜드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팀 유스 출신 등이 콜업될 가능성도 있다.

토트넘이 어떤 선택을 하듯 분명한 것은 팀의 주급체계를 흐트러뜨릴 영입은 없다는 점이다. 델레알리와의 재계약 등이 남아 있는 토트넘 입장에서는 기존 체계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포체티노 감독도, 팬들 역시 이같은 레비 회장의 방식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토트넘은 남은 여름도 잠잠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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