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현장]"우리선수들 자랑스럽다" 신태용의 16강 기살리기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7-05-29 01:28





스포츠는 분위기다. 우주까지 뚫고 나갈 기세로 승승장구하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묘한 분위기에 휘말리면 끝간데 없는 나락으로 치닫는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당황하는, 혈기왕성하고 큰무대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30일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16강전을 앞두고 '여우'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이 선수들 '기살리기'에 나섰다.

26일 조별 예선 잉글랜드전 첫 패배(0대1 패) 직후 신 감독은 선수들의 분위기를 걱정했다. 첫 패배가 들떠 있는 분위기에 오히려 예방주사가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우리 팀은 워낙 신나는 분위기가 있어서 들떠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감독 미팅, 선수 미팅 등 안에서는 전혀 들떠 있지 않다. 차분하게 미팅도 자주 갖고 많이 생각한다. 내 걱정은 오히려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오히려 북돋워야 할 것같다"고 했다.







잉글랜드전 이튿날인 27일 수원월드컵 보조구장, 회복 훈련전 신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둥글게 모였다. 신 감독의 경기 복기는 솔직하고 날카로웠다.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한 것은 인정한다. 잘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잘할 수 있고, 더 잘해야 한다"고 했다. 실패는 성장으로 이어진다. 보완점을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잉글랜드전의 가장 큰 문제로 '패스미스'를 지적했다. "효율적인 축구를 해야 한다. 발밑에 정확하게 넣어줘야 하는데 제대로 못넣어주면 5초가 사라진다"고 했다. 개선점을 콕 집어 지적한 후엔 선수들을 독려했다. "우리가 그동안 못했다면 이런 말 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 잘해왔잖아. 잠비아, 우루과이 상대로도 해냈잖아. 이제 16강, 본경기에서 보여줘야 한다." 선수들이 다시 파이팅을 외친 후 몸을 풀기 시작했다.

선수들과 나란히 러닝을 하는 내내 신 감독은 대화를 나눴다. 첫 바퀴, 다소 굳어있던 선수들의 얼굴이 네 바퀴, 다섯 바퀴를 넘어가며 서서히 풀렸다. 운동장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한옥타브 높은 웃음소리도 간간이 흘러나왔다.






러닝 후 '2인 1조'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조별예선 3경기, 혼신의 힘을 다하느라 지친 몸을 꾹꾹 눌러대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신 감독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돌아다니며 엎드린 선수들의 허리와 다리를 꾹꾹 밟아댔다. 선수들이 돌림노래로 비명을 질렀다. 공격라인 백승호-조영욱, 미드필더 이승모-임민혁이 짝을 이뤘다. '막내' 조영욱이 '선배' 백승호를 위에서 눌렀다. 신 감독이 조영욱을 위에서 짓누르며 '보복'했다. 유쾌한 러닝, 스트레칭 후 선수들의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진 채 '16강 결전지' 천안행 버스에 올랐다.


'기살리기'의 마무리는 '작심' 인터뷰였다. 신 감독은 잉글랜드전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일부의 비판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3-5-2 전술 처음 썼지만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안이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조1위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상대적으로 보면 잉글랜드 선수들은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몸값 100억, 150억 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상대가 우리한테 못했다고 생각하지, 대등하게 경기한 우리선수들이 나는 자랑스럽다. 우리는 대학생 선수가 대부분이고 K리그서도 매경기 뛰는 선수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보여준 경기력은 대등했다. 한국축구의 미래가 밝다 생각한다"고 응수했다. 공개 인터뷰를 통해 선수들의 기를 살렸다. 비록 패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선전한 어린 선수들을 향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28일 천안축구센터에서 가진 16강 첫 훈련에서도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지난 1월 포르투갈 전지훈련 때 맞대결에서 조영욱이 먼저 선제골을 넣고 종료 3분전 동점골을 허용하며 1대1로 비겼지만 당시 상대는 시즌중이었고 우리는 동계기간이라 몸이 무거웠다. 이번에는 컨디션도 좋고 부상자도 없는 만큼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포르투갈이 100% 공개훈련을 하며 자신감을 보였다는 말에 발끈했다. "우리도 경기 다음 날은 회복훈련을 한다. 경기 뛴 선수들은 몸을 푸는 정도니 어차피 공개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자신감과는 상관 없다. 개의치 않는다." 완벽한 준비를 약속했다. "포르투갈 골키퍼 외에 10명 선수 전원이 우리가 경계할 선수다. 1%도 방심하지 않고 잘 준비하겠다"며 강한 각오를 밝혔다.

20세 이하 월드컵, 매경기는 분위기 싸움이다. 역전 드라마가 유난히 많다. 일본은 이탈리아와의 최종전에서 0-2로 뒤지다 2대2로 비겼다. 포르투갈은 이란전에서 0-1로 뒤지다 2대1로 승부를 뒤집었다. 세상 당당한 축구, 포기하지 않는 축구, 신나는 축구의 힘을 믿고 있다.
천안=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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