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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가 열린 7일 오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양팀 선수들이 볼을 다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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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전 2015년 캐나다월드컵 출정식, 씩씩한 줄만 알았던 여자축구대표팀이 눈물을 쏟았다. 미드필더 전가을(인천 현대제철)은 "대한민국에서 여자축구선수로 사는 것이 외로웠다"며 울먹였다. "처음으로 출정식을 해주고, 이렇게 많은 언론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 상황이 처음이라 울컥했다"고 했다. 남자대표팀이 당연히 누려온 모든 것들이 여자대표팀에는 언제나 새롭고, 그저 감사한 일이었다.
#. 2017년 4월, 평양으로 향하는 길은 절박했다. 평양 아시안컵 예선은 '끝장 승부'였다. 조1위만이 아시안컵 본선 티켓을 획득하고, 본선에 올라야 2019년 프랑스월드컵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 객관적 전력이 절대 우세한 데다 '홈팀'이자 최강 북한을 꺾고 조1위를 해야 했다. '캐나다월드컵 16강' 선배들에게 프랑스월드컵은 후배들과 여자축구의 미래를 위해 꼭 가야할 길이었다. "프랑스월드컵에 못가면 2019년까지 여자축구는 이슈가 전혀 없다. 그나마 있던 관심도 지원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에이스' 지소연(첼시 레이디스)은 "내 머릿속은 오직 북한전 생각뿐"이라고 했다. "이길 때가 됐다"는 비장한 한마디를 남기고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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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가 열린 7일 오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전반 북한 선수의 페널티킥을 대한민국 김정미 골키퍼가 막아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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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가 열린 7일 오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전반 북한 선수의 페널티킥을 대한민국 김정미 골키퍼가 막아내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자 양팀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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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 대표팀 장슬기가 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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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 대표팀 장슬기가 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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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가 열린 7일 오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후반 대한민국 장슬기(19번)가 동점골을 성공시키고 환호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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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5만 명의 북한 관중이 운집한 평양 김일성경기장, 운명의 남북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태극낭자들은 '5만11 대 11'로 싸웠다. 1승4무12패의 열세는 애초에 잊었다. 오직 이겨야 한다는 생각 뿐. 전반 5분 '맏언니 골키퍼' 김정미(인천 현대제철)가 위정심의 페널티킥을 막아냈다. 북한선수의 다급한 차징 파울에 센터백 임선주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일촉즉발의 '벤치 클리어링' 신경전, '원팀' 윤덕여호는 한치도 밀리지 않았다. 왼어깨가 빠진 정설빈(인천 현대제철)은 아픔을 참은채 뛰고 또 뛰었다. 0-1로 뒤지던 후반 31분, 막내 장슬기(인천 현대제철)의 골은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1대1, 기적같은 무승부를 이뤄냈다. 경기 후 선수들은 말했다. "여자축구의 미래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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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 대표팀 장슬기가 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후반 동점골을 성공시키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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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가 열린 7일 오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후반 대한민국 장슬기(10번 뒤)가 동점골을 성공시키고 환호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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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윤덕여호의 매경기에는 스토리가 있다. 절절한 투혼이자 뜨거운 감동의 드라마다. 중계도 없고, 응원단도 없지만 '절실함' 하나로 기적을 써내려가고 있다.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예선 조추첨에서 북한과 같은 B조에 속했다. 17번을 싸워 단 1번 승리한 북한과의 맞대결, 심지어 평양 원정은 '최악'이었다. 윤덕여 감독은 북한의 최근 경기를 수백 번 돌려보며 연구를 거듭했다. 3월 키프로스컵 현장에서 북한전을 지켜보며 선수별 장단점을 파악했다. 선수들은 틈만 나면 각자 막아야 할 북한선수 영상을 들여다봤다. 훈련 때마다 고막이 터질 듯한 북한 응원가, 군가를 틀어놓았다. 북한과의 맞대결은 늘 뒷심 싸움이었다. 마지막 체력에서 졌다. 인천아시안게임 종료 직전 골을 허용하며 역전패한 쓰라린 기억을 곱씹었다. 이를 악물고 혹독한 체력훈련을 이겨냈다. 여자축구의 현재와 미래를 지켜내야 한다는 한마음으로 똘똘 뭉쳤다. '멘탈코치' 윤영길 한체대 교수가 제시한 "이제 이길 때가 됐다"는 승리의 주문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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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축구대표 이금민이 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AFC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 인도와의 경기에서 헤딩슛을 시도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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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태극기와 인공기가 같이 펼쳐져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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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과 인도의 경기가 열린 5일 오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후반 지소연이 헤딩으로 볼을 걷어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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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과 인도의 경기가 열린 5일 오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후반 종료 직전 지소연이 열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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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인도와의 조별 예선 1차전, 한국은 10대0으로 승리했다. 처음부터 '골득실-다득점'으로 조1위가 결정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철저히 준비했다. 북한이 8대0으로 승리한 상황, 이날 해트트릭을 기록한 이금민은 "우리는 8-0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뛰었다"고 했다. 후반 추가시간 지소연의 10번째 골이 터졌다. 휘슬이 울릴 때까지 단 한순간도 멈춰서지 않았다. 윤덕여 감독은 "오늘의 한골, 한골이 마지막에 소중한 의미가 될 것"이라고 했다.
7일 북한과의 2차전, 지난해 17세 이하 월드컵,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잇달아 우승한 북한의 젊고 강한 선수들을 상대로 체력도, 정신력도 밀리지 않았다. 역대 북한전에선 이기거나 비기다 마지막 '한방'에 무너지는 장면이 많았다. 이번엔 달랐다. 지던 경기를 무승부로 돌려놓았다. 1대1, 극적으로 비긴 후 김호곤 단장(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다들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뛰었다. 정설빈의 부상도 선수들을 깨운 것 같았다. 여자선수들의 투혼을 남자선수들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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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축구대표 이민아가 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AFC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 인도와의 경기에서 주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지소연, 이영주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평양 | 사진공동취재단 경향신문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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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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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홍콩과의 3차전에서도 투혼은 이어졌다. 북한과 비긴 만큼, 이후는 다득점 승부였다. 북한은 이미 홍콩에 5대0으로 승리한 상황. 5골 이상의 대승을 목표 삼았다. 지난해 11월11일 동아시안컵 예선에서 14대0으로 대승했던 홍콩을 상대로 첫골이 빨리 터지지 않으면서 의외로 고전했다. 전반 44분에서야 '캡틴' 조소현의 페널티킥 첫 골이 터졌다. 다득점을 향한 투지는 놀라웠다. 후반 18분 이후 체력이 떨어진 홍콩을 상대로 소나기골을 쏟아부었다. 30분새 5골을 몰아치며 결국 6대0으로 대승했다. 모두가 '빨간불'이라고 했던 북한과의 조1위 경쟁 구도에 '파란불'이 켜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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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여 감독이 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에게 박수를 치며 힘을 북돋우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7.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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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치열한 조1위 다툼을 펼치고 있는 북한은 9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4대0으로 승리했다. 3승1무(승점10)를 기록하며 조별리그 4경기를 모두 마쳤다. 4경기에서 총 18골을 넣었고 1실점했다. 한국은 3경기에서 2승1무(승점7), 총 17골을 넣었고 1실점했다.
11일 오후 6시30분 펼쳐질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전을 앞두고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최종전에서 2골 이상을 넣고, 2대1 이상으로 승리할 경우 '골득실, 다득점' 원칙에 따라 조1위, 아시안컵 본선행을 확정한다.
이틀에 한번씩 치러지는 살인적인 경기일정, 세상의 모든 불리한 '경우의 수', 외로운 시간들을 이겨냈다. 태극마크의 '투혼'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평양의 기적을 마무리할 시간, 단 90분만이 남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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