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AG]'韓 역사' 이승훈, 정상에서 들려준 1등 이야기

김가을 기자

기사입력 2017-02-23 18:34


ⓒAFPBBNews = News1

"운동을 그만두는 날까지 1등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

역사는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시간이 쌓이고 또 쌓여야만 가능하다. 그 속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가 된 이승훈(29)에게도 마찬가지다.

2009년, 아마도 이승훈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간이자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당시 쇼트트랙 선수였던 이승훈은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승훈은 과감했다. 또 단호했다. 그는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은 닮은 듯 다른 경기다. 쇼트트랙에서의 장점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승훈은 묵묵히 견뎠다. 그리고 해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 쇼트트랙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나선 이승훈은 5000m 은메달을 거머쥐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장거리 메달을 거머쥐었다. 기세를 올린 이승훈은 1만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정상의 자리는 달콤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거웠다. 1등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있었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이승훈은 이번에도 해냈다. 비결은 오직 하나, 훈련 또 훈련이었다.

1988년생인 이승훈은 한국 나이로 서른 줄에 접어들었다. 7년 전 밴쿠버동계올림픽 때와는 몸 상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승훈은 더욱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 서늘한 빙판 위에서 달리고 또 달렸다. 온 몸에 땀이 비 오 듯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승훈의 훈련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이승훈은 "일단 강한 훈련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강한 체력도 갖출 수 없고, 1등도 될 수 없다. 그냥 평범한 선수가 될 뿐"이라며 "일관되게, 초심으로 꾸준히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자 자기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었다.


땀은 노력을 배반하지 않았다. 이승훈은 올 시즌 매스스타트 남자 부문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변함없는 기량을 발휘했다. 변수는 있었다. 부상. 예상치 못한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승훈은 10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서 열린 2016~2017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테스트 이벤트 팀추월 경기에서 오른정강이 부상을 입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동해 여덟 바늘을 꿰맸다. 남은 대회는 물론이고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출전조차 불투명했다.

이승훈 역시 한동안 실의에 빠졌었다. 그는 "다친 뒤 3일 동안은 시즌을 접었었다. 통증도 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승훈은 자신보다 후배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는 "부상 당시를 돌아보면 내 실수로 다쳤다. 나 때문에 후배들에게 피해가 갔다. 삿포로 대회 팀추월 만큼은 꼭 출전하고 싶었다"며 "(다행히) 3일이 지나니 통증도 줄고 실밥이 당기는 정도의 느낌만 있었다"고 말했다.

강행군을 결정한 이승훈. 몸 상태는 완전하지 않았지만, 빙판 위에서 만큼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20일 열린 남자 5000m에서 아시아기록(6분24초32)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분위기를 탄 이승훈은 22일 열린 1만m와 팀추월에서 연달아 정상에 등극했다.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 금빛 피날레를 장식하며 이번 대회 4관왕으로 우뚝 섰다.

2011년 카자흐스탄 알마티 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던 이승훈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싹쓸이 하며 동계아시안게임 한국인 최다 금메달 기록을 갈아치웠다. 동시에 한국 선수 가운데 동·하계 아시안게임을 통틀어 가장 많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쁨을 누렸다.

이승훈은 "영광스럽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후배들이 많이 도와줬다"며 "사실 5000m와 1만m에서 자신감도 흥미도 잃었었는데, 이번 대회를 계기로 또 한 번 해볼 만 하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다음 시즌이 기대된다.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승훈의 목표는 명확하다. 1년 뒤 홈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그는 "이것이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끝나지 않고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이뤄지도록, 특히 평창 대회는 유럽 선수들도 있어서 어려운 싸움에 되겠지만 안 되리라는 법도 없다"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해 보겠다"며 굳은 각오를 다졌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이승훈. 그의 금빛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만 두는 날까지 1등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다. 아시아에서는 전무후무한 선수로 남고 싶다."


오비히로(일본)=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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