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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과 클럽팀은 다르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꾸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장현수(광저우 부리)의 풀백 기용이 바로 그 예다. 장현수는 좋은 센터백이자 수비형 미드필더다. 발기술도 나쁘지 않고 스피드도 '그 정도면' 준수하다. 현대축구가 윙백에서부터 공격을 풀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빌드업이 괜찮은 '센터백' 장현수의 윙백 전환은 분명 한번쯤 시도해볼만한 선택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플랜B 이야기다. 장현수는 전문 윙백에 비해 터치라인을 장악하는 힘이 떨어진다. 장현수가 붙박이로 기용된 이후 한국축구는 오른쪽 공격이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지난 카타르전에서도 한국의 공격 비중은 왼쪽이 47.3%에 달했다. 오른쪽은 33.9%였다. 그렇다고 수비력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장현수가 포진한 오른쪽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장현수는 뒷공간 커버에 어려움을 노출하며 수차례 기회를 내줬다.
문제는 슈틸리케 감독이 장현수 카드에 집착하면서 다른 선수들을 테스트할 기회를 잃었다는 점이다. 박주호(도르트문트) 김진수(호펜하임) 윤석영(브뢴비)이 소속팀에서 출전 시간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간은 있었다. 3차예선과 친선경기 등을 통해 K리그에서 뛰는 윙백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은 장현수' 라는 아집에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선수 운영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한번 퍼즐을 잘못 맞추니 그 다음부터는 뒤죽박죽이었다. 왼쪽 윙백이 익숙치 않은 '오른발 잡이' 오재석(감바 오사카) 임창우(알 와흐다) 등을 기용하는 우를 범했다. 이란에서 슈틸리케호 측면이 무너지는 동안 왼쪽의 전문가 고광민(서울)과 오른쪽의 전문가 정동호(울산)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대표팀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비센테 델 보스케 전 스페인 감독, 요아킴 뢰브 독일 감독은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데 능하다. 델 보스케 감독은 바르셀로나 소속 선수들의 플레이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전술을 만들었고, 뢰브 감독은 소속팀에서의 포지션을 철저히 지켜준다. 물론 팀 사정에 따라 포지션 파괴를 단행하기도 한다. 전제가 있다. 충분한 테스트를 거친 후다. 중요한 무대에서 쓰기 전까지 평가전을 통해 장단점을 완벽히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결단을 내린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우승 당시 '센터백' 울리 회베데스(샬케)의 오른쪽 윙백 기용은 철저한 준비가 만든 결과였다. 반면 슈틸리케 감독의 변칙에는 검증 과정이 생략됐다.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경기 시작 전 준비가 잘못됐거나, 상황이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갈 경우 빠르게 변화를 줘야 하는 것이 감독의 몫이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 변화는 철저히 4-2-3-1 혹은 4-1-4-1의 틀에 맞춘다. 지고 있으면 투톱, 밀릴 경우 중원에 숫자를 늘릴 수도 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철저히 포메이션 틀 안에서 변화를 준다. 타이밍도 맞지 않는다. 이란전 후반 좌우 윙백을 바꾸며 측면을 강화했지만 정작 가운데서 볼을 따줄 수 있는 김신욱(전북)의 투입은 한참 뒤에야 이루어졌다. 김신욱 투입 뒤 한국이 공격다운 공격을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분명 아쉬운 선택이다. 슈틸리케호 출범 후 역전승이 단 한번 뿐이었다는 점, 한번 붙었던 팀에게 매번 고전했던 점은 누가 뭐래도 감독의 문제다. 우리가 최종예선에서 부진한 이유는 세바스티안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케이로스 감독 같은 사령탑이 없기 때문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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