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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그러나 우려는 어김없이 현실이 됐다. 2016년 10월 11일, 팬들에게는 고통의 밤이었다. 한국 축구사에 이처럼 치욕적인 날이 있었을까, 물음표만이 허공을 맴돌 뿐이다. 유효슈팅 '0'.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잘못 꿴 단추 장현수(광저우 부리), 태극마크를 의심케 하는 오재석(감바 오사카)의 실종, 이해할 수 없는 교체 카드와 타이밍, 무색무취의 전술 등 부실도 이런 부실이 없었다. 한마디로 '이란 쇼크'였다. 0대1, 한 골차 패배가 그나마 다행이었다.
A조 3위로 추락한 한국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러시아행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더 큰 고민도 한국 축구를 혼란케하고 있다. 시한폭탄으로 전락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62)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 과연 미래를 함께할 수 있을지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경질도 염두에 둬야한다는 볼멘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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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란전 후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은 또 다른 도화선이었다. 그는 "우리는 카타르의 소리아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다. 그래서 잘 안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언급한 소리아는 카타르의 레퀴야에서 뛰는 스트라이커다. 우루과이 국적이지만 대표팀 출전을 위해 귀화했다. 소리아는 6일 한국과의 최종예선 3차전(3대2 한국 승)에서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골도 기록했다.
그러나 감독의 입에서 나와선 안되는 엇나간 비교였다. 경기력의 첫 번째 책임은 전권을 쥔 감독에게 있다. 감독이 선수를 뽑고, 전술을 운용한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감독이 안고 가야할 책임의 몫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소리아 발언'에 선수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손흥민도 서운했다. 그는 "여기에 대해 말하고 싶진 않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선수를 거론하며 말씀하신 건 아쉽다. 모든 선수들이 잘해보려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선수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얼마나 이기고 싶었겠나. 그래서 감독님 말씀이 아쉽다"며 말끝을 흐렸다.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이 "이란전은 내가 감독이었어도 화가 났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 없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허언도 홍수를 이뤘다. '내탓'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였다. 감독의 본분마저 망각했다. "당장 월드컵 본선에 가야하는 목표를 가진 우리가 오늘처럼 경기를 한다면 상당히 어렵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는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이란전 패배에 대해선 단골 코멘트로 얼버무렸다. "이를 극복하려면 장기적인 플랜에서 나와야 한다. 유소년 단계서부터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잘못될 때마다 원인을 한국 축구의 구조 탓으로 돌리려면 '감독 타이틀'을 달아선 안된다. 자신이 없으면 그냥 물러나면 된다. 문화 차이로 넘기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그는 중동에서도 지도자 생활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12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해명 입장을 밝혔다. "소리아 얘기는 적극적으로 하자는 의미가 오해로 전달된 것 같다. 나도 감정이 격해진 부분은 있었다. 오해의 논란에서 선수단을 보호하고 싶다. 이 위기를 추스리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다음달 15일 안방에서 우즈베키스탄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차전을 치른다. 슈틸리케 감독은 과연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가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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