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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서 최고로 긴 이틀이었어요."
불행의 서막은 8월 28일 전남전(1대2 패)이었다. 그 전까지 경기력이 올라오던 포항이었다. 중요했던 전남전 이후 거짓말처럼 팀이 무너졌다. 4연패에 빠졌다. 그 사이 벼르고 별렀던 수원FC전(2대3 패)까지 무너졌다. 포항은 올 시즌 수원FC를 만나 전패했다. 물러설 수 없던 21일 인천전(0대1 패)까지 패한 후 최 감독은 결심을 굳혔다. 최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위권에서 싸우는 것에 익숙한 선수들도 아니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팀을 장악하기 어려웠다.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다. 선수단을 깨우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혼자 털고 나가는 것 같아서 주변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포항 지휘봉을 잡을때 부터 시선이 곱지 않았다. 최 감독은 제주 출신이다. 김승대(옌벤) 고무열(전북) 신진호(상주)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간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최 감독 부임 후 그의 입김으로 영입한 선수는 양동현 하나였다. 최 감독은 불평하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을 만들면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기존 틀에 익숙해진 선수들은 최 감독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선수들에 맞춰줘야 했다. 최 감독이 가장 아쉬워한 부분이었다. 그는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다. 선수들이 틀에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더라. 그러다보니 내 스타일 대로 하지 못하고 선수들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물론 나도 선수들을 잘 이해시키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최 감독은 6월 스리백으로 전환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수비축구 논란도 있었다. 최 감독은 "단언컨대 수비축구를 요구한 적은 없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대로 경기가 풀려갔는데 이것이 밖으로 왜곡되는 것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9월 부진이 이어졌다. 서포터스 사이에서 하차는 물론, 유언비어까지 퍼졌다. 결국 최 감독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최 감독은 그 또한 자기 탓으로 돌렸다. 특히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준 프런트에 미안함을 보였다. 그는 "믿음을 준 것에 보답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아내는 마지막까지 지지의 목소리를 보냈다. 최 감독은 "아내가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하니까 차라리 잘됐다고 하더라. 일주일에 한두 번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고 얘기하더라"고 했다.
최 감독은 좌절하지 않았다. 이제 그의 지도자 인생 2막이 마감됐을 뿐이다. 그는 "내 첫 프로 감독이 이렇게 끝나서 안타깝기만 하다.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간 생활하면서 너무 빡빡했다"고 아쉬워 하며 "하지만 돈 주고도 못살 경험을 쌓은 것 같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면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당분간 아무 것도 안하고 쉴 생각이다. 그는 떠나는 순간에도 제자들을 걱정했다. 최 감독이 포항 선수단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너희들이 갖고 있는 120%를 보여줘야 살아남는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달라질 수 있다. 생각이 변해야 한다." 그렇게 최 감독은 포항을 떠났다.
포항=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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