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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정말 참 잘 왔다 #꼬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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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재가 걸어온 길은 곧 대한민국 리듬체조의 역사였다. 세종초 6학년 최연소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손연재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리듬체조 아시안게임 첫 메달인 동메달을 거머쥔 이래 '최초'의 기록을 잇따라 써냈다. 국제체조연맹(FIG) 리듬체조 월드컵 첫 메달(2012년 펜자월드컵), 올림픽 첫 결선 진출(2012년 런던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첫 메달(2014년 이즈미르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등 한국 리듬체조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아무도 걷지 않은 미지의 길이기었기에 더 힘들었다. 그 과정 속에서 손연재는 더 강해졌다. 앳된 외모 뒤에 감춘 가장 큰 재능은 '근성'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안되는 동작에 화가 난 손연재가 6시간 동안 매달려 기어이 성공시켰다는 유명한 일화가 탄생한 배경이다. 손연재는 2011년 러시아행을 택했다. '세계 최강' 러시아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매년 가족도, 친구도 없는 러시아에서 나홀로 훈련을 거듭했다. 텃세도 많았다. 매트 밖에서 훈련하며 눈치밥을 먹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그 곳에서 '이방인' 손연재는 독하게 버텼다. 테이핑한 다리와 굳은살 박인 발에는 이번 올림픽을 위해 강도높게 이어온 훈련의 흔적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었다.
손연재는 이번 올림픽을 위해 칼을 갈았다. 지금껏 보여줬던 것보다 더 촘촘하고, 더 디테일한 연기를 준비했다. 이를 위해 리듬체조 선수에게는 생소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 결과 손연재의 장기인 '포에테 피봇'(한쪽 다리를 들고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동작)은 다리를 접고 회전하던 기존 동작(0.1 가점) 대신 다리를 편 채 도는 고난도 기술(0.2 가점)로 진화했다. 장점이었던 표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리본 종목의 음악을 탱고로 선택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 강사에게 탱고춤까지 배웠다. 성과는 바로 이어졌다. 손연재는 올림픽이 열리는 올 시즌, 6개 대회 연속 메달을 목에 걸며 기복 없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리우올림픽은 손연재가 그간의 준비를 매트 위에서 보일 마지막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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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는 끝났다. 지난달 27일 브라질 상파울루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손연재는 야나 쿠드랍체바, 마르가리타 마문 등 리우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전에 출전하는 러시아 대표 선수들과 함께 실전 같은 훈련을 소화했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도 러시아 대표팀과 마무리 훈련을 함께 했다. 훈련 강도는 높았다.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으로 나눠 총 6시간 동안 연기력 다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저녁에는 체력훈련과 물리치료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리우 입성 후 하루 쉼표를 찍은 손연재는 18일(한국시각)부터 다시 훈련을 재개했다. 옐레나 리표르도바 전담코치가 지켜보는 가운데 1시간30분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갔다. 몸풀기 후 후프, 볼, 곤봉, 리본을 순서대로 이어가며 감을 유지했다. 배경음악 없이 연기를 점검하며, 세부 자세를 가다듬었다. 잘 되지 않는 동작은 몇번이고 반복했다. 훈련을 마친 손연재는 "인터뷰는 경기 끝나고 하겠다. 죄송하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시였다.
4년 전 올림픽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성적표(개인종합 5위)를 안겼던 런던이 그에게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무대라면, 이번 리우는 그의 리듬체조 인생을 결산할 마지막 마침표다. 손연재 역시 "준비한 것을 모두 보여주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손연재는 19일 밤 예선전을 시작으로 21일 결선에서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한다. '꼬꼬마' 시절부터 17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해온 소녀의 꿈이 이제 리우 무대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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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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