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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햄턴(영국)=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비디오 분석관. 이 개념이 국내 축구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압신 고트비 분석관을 데려오면서 4강 신화 창조의 기틀을 닦았다. 이후 국내 축구계에는 비디오분석관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았다. 그로부터 14년. 많은 비디오분석관이 나왔고 축구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배씨는 힘든 길을 걸었다. 창원에서 태어난 그는 축구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꿔왔다. 선수도 꿈꿨다. 하지만 프로 선수가 되기에는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판단, 일찍 꿈을 접었다. 대신 축구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8년. 다른 친구들이 수능 공부에 매진할 때 배씨는 축구인들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내며 조언을 구했다. 그 결과 국내 한 스포츠분석연구소에서 3개월짜리 분석전문가 과정을 들었다. 2009년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스포츠분석연구소에서 살다시피했다. 그해 4월 대한축구협회 D급 지도자과정을 들으며 영국에서 공부할 꿈을 꿨다
2010년 입대한 그는 2012년 5월 전역을 했다. 20일 뒤 영국으로 무작정 출국했다. 파운데이션 과정을 밟으며 영어를 배워나갔다. 처음부터 고역이었다. 언어가 문제였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영어를 다시 배워 오는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위 도움으로 파운데이션 과정을 마쳤다. 2013년 사우스햄튼 솔렌트대학 축구학과에 입학했다. 학부 과정을 마친 그는 9월부터는 치체스터 대학의 스포츠 퍼포먼스 분석 과정 석사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1년에 단 12명을 뽑는 과정으로 한국인으로는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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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는 대학에서 축구 전반을 공부했다. 그는 이 작업을 두고 '축구를 보는 다양한 눈'이라고 했다. 그 가운데서 영상분석을 공부하는 것은 '선수와 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다. 역시 비주얼로 보는 것이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팬들과의 소통도 또 다른 이유다. "팬들에게 전술 영상 분석을 통해 축구의 다양한 모습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 그는 "영국에서는 매치 오브 더 데이같은 프로그램에서 게리 네빌 등 분석 패널들이 비디오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배씨는 국내 한 포털 사이트에서 전술 분석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팬들에게 부족하지만 영국에서 축구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의 시각에서 축구경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영상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팀마다 왜 1-4-3-3이 다른것인지 영상을 통해 설명하고 토론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비디오분석관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영국에서는 비디오분석관이라는 용어를 쓰기는 한다. 하지만 대부분 분석관들은 코칭 라이센스 관련 학위를 가지고 있다.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서 "만약 분석관이 단순히 축구를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상을 찍고 편집만 한다면 분석 코치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때문에 분석 코치는 코치여야하고 코치는 분석 코치여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 개개인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훈련도 함께 하고 해야 제대로 된 분석을 내놓을 수 있다. 훈련을 단순히 찍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함께하고 선수들에게 맞는 도움을 비주얼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이 일의 핵심"이라고 했다
좋은 실전 경험도 쌓았다. 지난해 여름 청춘FC의 벨기에 합숙훈련에 합류했다. 안정환 이을용 감독을 도왔다. 훈련도 함께했고 비디오 분석도 했다. 선수들이 찾아오면 토론을 하면서 나도 많이 배웠다"고 했다.
준비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배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대부분 배씨처럼 축구 종가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배씨는 "조언을 해줄 위치도 아니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 경험에서 나온 내 이야기를 해준다. 대부분 무작정 영국 가면 내 삶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더라. 그리고 뭔가 학위를 받으면 그게 만능키라고 여기더라. 그게 아니다. 준비가 없으면 바뀌지 않는다. 학위 역시 생갭다는 중요하지 않다. 준비를 하고 거기에 걸맞는 실력을 키워야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배씨는 후배들을 위해 또다른 준비를 했다. 한국에 있는 호남대 축구학과와 솔렌트대학 축구학과가 국제교류협력을 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배씨는 "사실 나는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다. 나보다 더욱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분들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 발판이 될 돌 하나를 놓는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의 아주 작은 결실을 이제 맺었을 뿐"이라고 했다.
치체스터 대학원에 간 후 배씨는 축구에 대해 더욱 공부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후 기회가 된다면 세계 다양한 곳에서 축구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그가 꾸는 최종 꿈은 바로 '꿈을 꾸는 사람들의 꿈이 되는 것'이다. 배씨는 "내가 하는 도전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시에 한국 축구 발전도 꿈꾸고 있다. 그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결국 내가 배운 것들이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내게는 큰 영광일 것이다. 그를 위해 열심히 달려나가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