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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런던. 그곳에서 한국 축구의 새로운 신화가 쓰였다.
홍명보호는 전진 또 전진했다. '종가' 영국을 누르고 '극일(克日·일본을 이긴다)'의 환희 속에 올림픽 사상 최초 메달(동메달)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당시 성남 일화(현 성남FC) 감독이었던 신태용 감독(46)은 금의환향한 홍명보호의 축하연 자리에서 뼈 있는 한 마디를 남겼다. "다음 올림픽팀 감독이 누가 될지 몰라도 정말 힘들 것이다."
1%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다
"런던 동메달 신화를 넘어설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긴 어렵다." 2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D-100 기자회견 자리에 나선 신 감독의 솔직한 대답이다. 누구도 이뤄내지 못했던 사상 첫 메달이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다. "(4년 전 발언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웃음). 그게 내가 될 지 상상도 못했다."
올림픽 축구는 월드컵보다 짧은 단기전이다. 조별리그 3경기와 8강, 4강, 그리고 결승전까지 6경기 만에 희비가 엇갈린다. 한 발자국만 삐긋하면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다. 지난 14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조추첨 결과 신태용 호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한국 56위)에서 각각 16위, 5위에 올라 있는 멕시코(북중미), 독일(유럽) 등 각 대륙을 대표하는 강팀들과 한 조에 묶였다. 런던 대회보다 어려운 대진이다. 최약체인 피지(오세아니아·FIFA랭킹 182위)와 첫 경기를 치르는 게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승부는 속단할 수 없는 법이다. 신 감독이 "한 순간에 무너지면 언제든 탈락할 수 있다. 1%의 방심도 용납될 수 없다. 피지전부터 매 경기 결승전처럼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신 감독은 브라질에서 진행됐던 조추첨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현지 답사를 마친 뒤 독일로 건너가 해외파 선수 및 맞상대 독일의 전력 분석에 들어갔다. 본선까지 남은 시간은 넉 달. 짧진 않지만 그렇다고 길지도 않다. 신 감독은 "상대국 예선 경기 비디오 자료를 확보했지만 확인은 못했다"면서도 "분데스리가에서 확인한 독일 선수들은 상당히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조기소집으로 경기력 극대화?
신 감독은 선수 시절이었던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당시 한국은 선전했으나 3무로 조별리그 탈락의 쓴잔을 마신 바 있다. 지도자로 나서는 두 번째 올림픽 도전은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 신 감독은 "3경기 모두 대등한 승부를 펼쳤고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아쉬웠다. 우리 선수들에겐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라고 격려하고 싶다. 선수 시절 경험과 지도자의 마음을 더하면 제자들을 좀 더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면과제가 적지 않다. 지난해 리우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활약했던 신태용호의 주축 선수들이 침묵하고 있다. 권창훈(22·수원 삼성)과 황희찬(20·잘츠부르크) 만이 돋보일 뿐, 확실한 주전 자리를 잡은 선수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본선까지 이들의 경기력을 끌어 올리는 일 뿐만 아니라 최종예선 당시 지적 받았던 수비 불안 보완까지 감안하면 신 감독의 고민이 클 법하다. 이에 대해 신 감독은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수비가 강해야 한다. 그런데 K리그 소속 선수들이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기존 주전 풀백 선수들이 제 포지션을 소화하지 못하는 등 상당히 힘겨운 부분이 있다"며 "최종 소집 뒤 경기 감각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과의 협의를 통해 하루라도 일찍 소집하고 싶다. 나도 프로팀 지도자를 해봤기에 시즌 중에 선수 소집을 프로팀에서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프로팀 나름의 고민이 있다. 나도 프로팀 지도자를 해봤기에 이해한다. 전폭적인 지원이 쉽진 않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소집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면 상당히 고마운 일이다. 솔직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간절히 읍소했다.
어떤 결과든 '내 운명'
신 감독은 2009년 성남 감독으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해 소신 있는 발언과 거침없는 전술로 '젊은 지도자' 열풍을 몰고왔다. '역대 최약체'라는 비아냥 속에 출전했던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보기 좋게 본선 티켓을 따내며 실력을 인정 받았다.
본고사는 이제 시작이다.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운명은 결과에 달렸다. 런던 신화의 창조자였던 홍명보 전 A대표팀 감독은 '브라질의 눈물' 속에 결국 고개를 떨궈야 했다.리우올림픽의 결과는 신 감독의 지도자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무대다.
"올림픽팀을 맡기 전 많은 고민을 했다. 본선 출전권을 따지 못하면 지도자 인생이 끝날 것이라는 심리적 압박이 컸다. 하지만 올림픽팀 수장 자리가 쉽게 오는 자리도 아니기 때문에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솔직담백한 그만의 화법이다. "본선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 운명이다. 지도자에게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순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2009년 성남에서 첫 승을 거두면 '람바다 춤'을 추겠다던 공약을 했다가 레슬링 복장을 한 채 이를 실천한 바 있던 신 감독에게 올림픽은 좀 더 긴장되는 무대인 듯 하다. "퍼포먼스 공약은 되도록 안하려 하고 있다(웃음). 만약 정말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할 생각이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신태용호는 5월 말부터 리우행을 향한 닻을 올린다. 5월 말 안방에서 '4개국 국제 축구대회(가칭)'를 개최해 담금질을 펼친다. 당초 슈틸리케호와 마찬가지로 유럽 원정 평가전을 치를 계획이었으나 조추첨이 늦어지면서 상대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대한축구협회가 직접 나섰다. 4개국 초청 대회를 마지막으로 국내 훈련 일정을 마무리 한 뒤 7월 16일 브라질로 출발할 예정이다. 신태용호는 상파울루에 훈련캠프를 차리고 현지에서 1~2차례 더 평가전을 치를 계획이다. 상대팀 섭외 상황에 따라 북미에서 평가전을 치르고 브라질로 들어가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피지와 갖는 대망의 리우올림픽 본선 조별리그 C조 첫 경기는 8월 5일 오전 5시 사우바도르의 폰테누바아레나에서 펼쳐진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