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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은 훌훌 털어내려고요. 잉글랜드 리그에서 분풀이해야죠."
여자축구의 첫 올림픽 티켓이 걸린 경기, 꼭 이기고 싶은,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욕심과 부담감은 독이 됐다. 평소처럼 쿨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PK를 놓쳤다. PK 실축에 대한 비난보다 본인 스스로에게 가장 큰 아픔이었다. "PK를 퍼낸 후 '멘붕(멘탈 붕괴)'이 왔다"고 했다. 김혜리, 임선주, 서현숙 등 10대때부터 줄곧 함께 공을 차온 동료들이 "네가 그렇게 흔들리는 모습은 난생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다.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정신없이 뛰는 지소연에게 '베테랑 수비수' 황보람은 "아직 진 거 아니야. 끝까지 하자. 할 수 있다"고 소리쳤다. 0-1로 밀리던 후반 41분 정설빈의 기적같은 동점골이 터졌다. 지소연은 "설빈언니의 동점골 후에야 정신이 돌아왔다"고 했다. "설빈언니가 앞으로 10년동안 밥 사야 한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승부를 되돌려놓은 선배, 포기하지 않은 팀에게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날 밤 지소연에게는 지인들로부터 위로와 격려의 문자가 답지했다. "정말 많은 문자를 받았다. 팀 동료들, 남자축구 오빠들, 지인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위로해주셨다"고 했다. "내게 첫 PK 실패는 큰 배움이 됐다. 앞으로 흔들림없이 더 침착하게 경기하겠다"고 다짐했다. "아픔을 훌훌 털고 가겠다"고했다.
'바늘구멍' 리우올림픽행 티켓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호주와 중국에게 돌아갔다. '아시아 2강'으로 손꼽히던 일본과 북한이 낙마했다. 지소연은 "호주와 중국이 나갈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아시아 여자축구가 평준화되는 분위기다. 경기장에서 우리도 북한, 일본을 상대로 충분히 해볼 만했다. 격차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아쉬움만 깊어졌다. "아… 이길 수도 있었는데…"하더니 "정몽규 회장님(대한축구협회장)이 북한전, 호주전 2경기나 현장에 직접 오셔서 응원하고 격려해주셨다. 호주전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 했다.
지소연은 10일 대표팀이 귀국한지 하루만인 11일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11월 시즌을 마치고 돌아온지 4개월만이다. "소속팀 선수들과 동계훈련을 함께하진 못했지만, 발 맞추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대표팀에서 몸을 열심히 만들었다. 아쉬움을 빼고, 아픈 곳은 없다"고 했다. 아쉬움을 안고 떠나는 3년차의 각오는 남다르다. 다시 이를 악물었다. 잉글랜드 여자슈퍼리그(WSL) 첼시 레이디스에서 3년차를 맞는다. 지난 2년간 팀의 준우승과 우승, FA컵 우승을 이끌었고, 첫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을 썼고, WSL 올해의 여자선수상을 휩쓴 지소연은 지난 연말 최고의 조건으로 재계약했다. 런던 도착 직후 브리스톨 아카데미와의 연습경기에 나선다. 20일 밤 11시(한국시각) 돈캐스터 벨스와의 FA컵 경기를 시작으로 25일 또다시 돈캐스터 벨스와 WSL 리그 개막전을 치른다. 리그와 FA컵 2연패,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 이상을 목표 삼고 있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시작된다.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승부사' 지소연의 각오는 짧지만 당찼다. "잉글랜드리그에서 아쉬움을 풀어야죠. 분풀이해야죠."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