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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도하의 기적에 이은 대역사, 한국 축구가 자랑스럽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6-01-27 18:26



1993년 10월 28일이었다.

1994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최종전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다. 3회 연속 월드컵에 도전한 한국 축구는 암울했다. 1승2무1패, 자력 진출은 물건너갔다. 본선행 확률은 1%도 안됐다. 숙명의 라이벌인 한국과 일본이 사선에 섰다. 시나리오는 절박했다. 한국이 북한전에서 2골차 이상을 거두고, 일본이 이라크와 비기거나 패해야 골득실차에서 운명이 바뀔 수 있었다.

두 경기는 동시에 킥오프됐다. 김 호 감독이 이끈 한국은 북한을 3대0으로 꺾고, 반전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웃을 수 없었다. 태극전사들은 종료 휘슬이 울렸지만 고개를 떨군 채 그라운드를 퇴장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이 이라크에 2-1로 리드하고 있다는 소식을 인지하고 있었다. 희망은 빛을 잃고 있었다. 모두가 아쉬운 탄식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순간 드라마가 연출됐다. 이라크가 종료 10초 전 마지막 공격에서 동점골을 터트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승부는 2대2로 막을 내렸다. 초상집의 그라운드는 순식간에 잔칫집으로 바뀌었고, 한국이 극적으로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다. '도하의 기적'은 지울 수 없는 미소로 뇌리에 남았다.

햇수로 23년이 흐른 2016년 1월 27일, 도하에서 다시 한번 역사가 쓰여졌다. 도하는 역시 약속의 땅이었다. 올림픽 축구가 신화를 작성했다. 신태용호가 이날 개최국 카타르와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최종예선 4강전에서 3대1로 승리하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 진출=올림픽 본선행'이다. 한국은 결승전 결과와 관계없이 아시아에 배정된 3장의 올림픽 티켓 가운데 1장을 차지했다. 지구촌 축구사에 첫 역사가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전대미문의 새 시대를 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시작된 여정이 2016년 리우올림픽까지 연결됐다.

대역사를 이룬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보낸다. 한국 축구의 힘이 느껴져 더없이 흥분된다. 비워지면 채워지고, 비워지면 또 채워지는 선순환 구조가 뿌리내렸다.

신태용호는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23세 이하 대회인 아시아지역 올림픽 최종예선의 경우 A매치 데이가 아니어서 해외파도 차출이 쉽지 않다. 구단이 허락해야 차출할 수 있는 구도다. 최정예 진용을 꾸리는 것은 사치였다.

출발부터 우여곡절도 있었다. 올림픽대표팀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28년 만의 금메달을 목에 걸은 이광종 감독이 팀을 지휘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급성 백혈병으로 지난해 초 도중하차했다. A대표팀 코치였던 신태용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올림픽 감독과 A대표팀 코치, 겸직이었다.

감독마다 색깔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신 감독은 새롭게 팀을 꾸렸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대다수가 이름없는 선수들이었다. 형세 또한 위태로웠다. 조별리그에 이어 요르단과의 8강전을 거치면서 환희보다 걱정이 컸다. 결과는 가져왔지만, 내용은 기대이하였다. 1승만 더 챙기면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를 달성하지만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히 '리틀 태극전사'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카타르전에서 근육 경련으로 쓰러지는 선수들이 한둘이 아닐 정도로 처절하게 싸웠다. 그리고 기우라는 것을 온몸으로 시위했다.


한국 축구가 자랑스럽고, 미래도 밝다. 박지성이 은퇴하자 '쌍용' 기성용(27·스완지시티)과 이청용(28·크리스탈팰리스)이 빈자리를 채웠다. 이어 손흥민(24·토트넘)이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 류승우(23·레버쿠젠) 권창훈(22·수원)과 '막내' 황희찬(20·잘츠부르크) 황기욱(20·연세대) 등 리우 올림픽 세대가 새롭게 등장했다. 리우올림픽 이후에는 지난해 17세 이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펄펄 난 이승우(18·바르셀로나 B) 세대가 기다리고 있다. K리그와 해외, 학원 축구에서 묵묵히 흘린 땀들이 모아져 차례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신태용 감독은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뤄낸 후 "선수단이 하나가 돼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우린 늘 '다함께', '다함께'를 외쳤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로 한국 축구가 한 단계 성숙해 이제는 아시아의 맹주가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 축구는 아시아 무대가 좁다. '다함께' 세계를 노래할 때다.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는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홍명보호가 이룬 '동메달 신화'였다. 신 감독은 "동메달 이상의 성적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처럼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K리그는 평균 관중 7000명대 선에 머물고 있고, 어린 나이에 해외로 진출하는 선수들의 경우 꽃도 피우지 못하는 지는 선수들이 꽤 있다. 역경은 있지만 그래도 제대로 갈 길을 가고 있다.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한국 축구는 브라질 리우에서 새로운 희망이 샘솟고 있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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