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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준, '7년의 눈물' 드디어 씻었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6-01-15 08:56


◇석현준은 아약스 입단 뒤 유망주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저조한 활약으로 방출된 뒤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지난 2009년 아약스 입단 뒤 유벤투스와의 유로파리그 경기에 출전한 석현준이 상대 선수와 볼을 다투고 있다. ⓒAFPBBNews = News1

7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2009년 석현준은 '한국 차세대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공격수로 꼽혔다. 무명의 고교 장신 공격수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최강팀이자 '유스 사관학교' 아약스의 테스트를 거쳐 정식 입단한 사실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약스의 유럽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 명단까지 이름을 올리면서 승승장구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석현준에게 1군 자리는 없었다. 2군 무대서 펄펄 날았지만 그뿐이었다. 당시 아약스의 주포 역할을 했던 루이스 수아레스(현 FC바르셀로나)의 벽이 너무 높았다. 석현준은 2011년 5월까지 두 시즌 간 아약스서 단 3경기를 뛰는데 그쳤다.

방랑이 시작됐다. 석현준은 2011년 6월 에레디비지에의 흐로닝언 유니폼을 입으며 재기를 노렸다. 리그 3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는 등 반짝 활약했으나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방출됐다. 2013년 1월 마리티무(포르투갈) 유니폼을 입었지만 6개월 활약에 그친 뒤 알 아흘리(사우디아라비아)로 이적했다. 이번엔 부상에 발목 잡혔다. 프리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석현준은 입단 한 달여 만에 골절상을 하며 장기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후 복귀했으나 18경기서 단 2골에 그친 초라한 활약이었다. 유럽에 정착하지 못했던 석현준이 중동 무대에서도 부진하자 일각에선 국내로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번째로 밟은 포르투갈 무대는 반전의 시작이었다. 석현준은 2014년 6월 나시오날 유니폼을 입으면서 서서히 가능성을 드러냈다. 전반기 리그와 컵대회 등 19경기서 5골을 터뜨린 석현준은 지난해 겨울 이적시장에서 비토리아로 이적해 다시 5골을 쏘아 올리며 처음으로 한 시즌 두 자릿수 득점(10골)을 기록했다. 자신감은 곧 날개가 됐다. 흐로닝언 시절 이후 4년 만에 같은 팀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석현준은 전반기 19경기서 11골을 터뜨리는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완벽히 재기했음을 입증했다. 타점 높은 헤딩 뿐만 아니라 발재간, 몸싸움 등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라는 기분좋은 평가가 포르투갈 언론을 통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되살아난 기량은 2010년 이후 5년 만의 태극마크 탈환으로 이어졌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아 지난해 9월 라오스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2차전에서 멀티골을 쏘아 올리면서 존재감을 입증했다. 이정협의 부상 이탈 뒤 공격 옵션에 고심하던 슈틸리케 감독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 만의 길을 걸었던 석현준은 포르투갈 최강팀이자 유럽 대항전의 단골손님인 포르투에 입단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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