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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R리그 부활]②이근호-이청용에게도 R리그는 잊을 수 없는 무대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6-01-13 18:12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와의 1차전이 열린 2014년 6월18일, 대한민국은 이근호(엘 자이시)가 쏘아올린 중거리포 한방에 열광했다. 하지만 하마터면 이 골은 세상에 나오지 못할뻔 했다. R리그가 없었다면 말이다.

이근호는 R리그가 낳은 최고의 스타다. 2003년 부평고 전국대회 3관왕의 주역이었던 이근호는 2004년 많은 기대속에 인천에 입단했다. 그러나 K리그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2년 동안 이근호가 나선 경기는 단 8경기 뿐이었다. 실패한 유망주로 끝날 것 같았던 그에게 한줄기 빛이 돼 준 것이 바로 R리그다. 이근호는 2006년 R리그에서 20경기에 출전해 7골-7도움을 올리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R리그에서 경험과 자신감을 더한 이근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성장했다.

빅리그를 누비고 있는 K리그 출신 유럽파들의 시작도 R리그였다. 이청용(크리스탈팰리스)이 대표적이다. '최고의 재능' 이청용은 도봉중을 중퇴하고 2004년 FC서울에 입단했다. 중학생에게 1군의 벽은 너무 높았다. 1군의 치열함을 피해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었던 무대가 R리그였다. 기성용(스완지시티) 고명진(알 라이안) 고요한 등 친구들과 함께 R리그를 누비며 프로선수로 성장을 거듭했다. 2004년 우승, 2005년 준우승을 차지했던 서울 2군의 화려한 축구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2006년 세뇰 귀네슈 감독의 눈에 띄어 1군에 진입한 이청용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최고의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까지 진출했다.

이처럼 R리그는 최고의 선수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무대다. 이근호의 인터뷰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2군에서 시작해도 월드컵에 나갈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후배들에게 주고 싶었다. R리그는 경기에 나서는 11명 이외의 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리그다. 그래서 내게 매우 뜻 깊은 무대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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