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식 감독이 팬들에게 전하는 편지 "믿음 주시면 반드시 보답알 것"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5-11-25 19:03


대전월드컵경기장/ K리그 클래식/ 대전시티즌 vs 부산아이파크/ 대전 최문식 감독/ 사진 서혜민

"마음이 참 아팠어요. 잠도 이루지 못할만큼…."

21일 열린 인천과의 올 시즌 마지막 홈 경기. 대전 서포터스 석에는 대형 걸개가 걸려있었다. '4승 7무 25패! 구단과 감독은 책임져라!' 이를 본 최문식 대전 감독은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잔류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왔다. 하지만 강등이라는 현실은 아팠다. 무엇보다 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서포터스는 경기 후 선수단 버스가 지나는 길목에 서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 감독은 그런 팬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최 감독은 "팬들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백번 이해한다. 모든 것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내 책임이다. 팬들에 죄송하다"고 했다.

2015년은 탄탄대로 였던 최 감독 축구인생에서 가장 쓴 한 해였다. 최 감독은 자타공인 K리그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명이었다. 지도자 변신 후에도 재능있는 유소년들을 육성해내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올림픽대표팀 수석코치를 하던 최 감독은 5월 조진호 전 감독의 후임으로 대전 지휘봉을 잡았다. 최 감독은 '볼 점유율을 극대화한 축구'를 모토로 내세우며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여름이적시장에서 무려 11명의 선수를 데려왔다. 내보낸 선수 숫자도 11명이나 됐다. 최 감독은 자신감이 넘쳤다. "8월 이후부터는 달라진 대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부임 후 3승5무17패에 그쳤다. 내용면에서 좋은 경기가 많았지만 고비를 넘지 못했다. 추가시간에 골을 먹어서 승점을 내준 경기가 부지기수였다. 뚝심있게 자신의 철학을 밀어붙이던 최 감독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렸다. 최 감독은 "지금 보다 더 힘든 시기였다. 분명 내 축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승리하지 못하자 혼돈이 왔다.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8월 광주전에서 감독 데뷔 첫 승을 거둔 최 감독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승리의 기쁨이 아니었다. 최 감독은 "나를 믿어준 프런트와 팬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비로소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도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다. 대전은 광주전에서 스리백을 앞세운 수비축구를 펼쳤다. 최 감독의 철학과는 맞지 않는 축구였다. 최 감독은 "그때 '내가 대전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팬이 '지기는 했지만 감독님만의 패싱 축구에 인상을 받았다. K리그에 그런 축구를 하는 팀도 필요하다'고 해주더라. 철학을 굽히는 것 보다 실패를 통해 발전하는 것이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전에 점유율이라는 뿌리가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성적도 올랐다. 스플릿 이후 3경기 무패(2승1무)로 가능성을 보였다. 대전만의 축구로 만든 의미있는 결과였다. 최 감독은 "시간이 흐를수록 느낀 점이 많았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보완해야할 점도 많았다. 하지만 대전도 수준 높은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했다. 대전은 시행착오 끝에 서명원-황인범-김병석이라는 확실한 척추라인을 갖췄다. 기술과 창의력을 모두 보유한 이들은 최 감독식 축구의 첨병들이다. 최 감독은 "몇몇 포지션에 보강만 이루어진다면 올 시즌 보다 더 좋은 축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물론 전제는 팬들의 믿음이다. 최 감독은 팬들의 믿음이 대전에 더 큰 희망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처음 대전에 왔을 때 한가지 목표가 있었다. 대전에 확실한 색깔을 주고 싶었다. 나는 기술축구라고 생각했다. 이기려고만 하는 축구로는 미래가 없다. 대전의 젊은 선수들을 잘 키워서 재밌는 축구를 하고 싶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그렇게 축구를 한 사람이기에 앞으로도 기술축구 완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을 것이다. 팬들이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프지만 더 큰 행복을 드릴 자신이 있다. 올 시즌의 교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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