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원정, 22년간 왜 한국축구의 무덤이었나?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5-09-07 17:23 | 최종수정 2015-09-08 08:25


베이루트(레바논)=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레바논 원정은 지난 22년간 한국 축구의 무덤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레바논 원정에서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둔 것은 1993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벌어졌던 1994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1차예선이었다. 당시 하석주(현 아주대 감독)의 결승골로 1대0 신승을 거뒀다.

이후 한국은 세 차례 레바논 원정을 떠났다. 무대는 모두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이었다. 결과는 2무1패. 2004년 10월 13일에 열린 2006년 독일월드컵 2차예선에선 전반 7분 만에 최진철의 선제골로 기분 좋게 앞서갔다. 그러나 전반 27분 동점골을 얻어맞고 1대1로 비겼다. 비운의 서막이었다. 2011년 11월 15일에 펼쳐진 2014년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에선 1대2로 패했다. 후폭풍이 거셌다. 당시 A대표팀을 이끌던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는 단초가 됐다. 수장이 바뀐 2013년에도 레바논 원정에서도 희망의 불빛은 켜지지 않았다.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에 이어 최종예선에서 다시 만난 한국은 1대1로 무승부를 거뒀다.

그동안 레바논 원정에서 한국은 왜 '고양이 앞에 쥐'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어떤 변수들이 선수들을 괴롭혔던 것일까.

우선 선수들은 시차와 싸워야 했다. 레바논은 아시아에 속해있지만 유럽 접경지역이다. 지중해 연안의 이스라엘, 터키 등 유럽과 가까운 6시간차가 난다. 때문에 대표팀은 시차를 고려해 보통 경기가 열리기 4~5일 전에 레바논에 도착해 적응 훈련을 갖는다.

선수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 열악한 잔디 상태였다. 잔디 속에는 심지어 담배 꽁초까지 섞여 있었다.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 레바논 원정 때 주전 골키퍼로 출전했던 정성룡(수원)은 "당시 잔디 상태가 엉망이었다. 필드 플레이어들이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2013년 레바논 원정멤버에 포함됐던 이근호(전북)도 "잔디가 정말 좋지 않았다. 원활한 패스 플레이로 경기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돼 롱볼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잔디 외에도 홈 관중 텃세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위축시켰다. 정성룡은 "관중이 상당히 다혈질이더라. 특히 선수들의 눈을 향해 레이저를 쏘며 플레이를 방해했던 기억도 있다. 심판에 어필을 해도 전혀 먹히지 않더라"고 전했다. 이근호도 "관중 분위기가 격하고 험악했다. 그라운드 옆에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있어 심리적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경기장 규모도 선수들의 집중력을 방해했다. 한국은 2011년과 2013년 나란히 베이루트의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펼쳤다.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은 4만명의 관중이 들어찰 수 있는 큰 경기장이다. 이근호와 정성룡은 "경기장이 너무 커 산만하고, 집중하기 힘들었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번 결전의 장소는 베이루트에서 40km가 떨어진 제3의 도시 시돈의 사이다 무니시팔 스타디움이다. 경기장은 변했지만, 환경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사이다 무니시팔 스타디움은 2만2000명을 수용,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 절반 수준이지만 전형적인 종합경기장이라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news@sportschosun.com -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