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투혼의 간절함, 제주에게 미소를 짓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5-08-23 21:34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라커룸 분위기가 비장합니다."

23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와 광주의 2015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7라운드. 경기 전 몸을 풀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서는 선수들의 머리가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일부는 삭발도 했다. 선수들을 이끄는 코칭스태프들의 머리도 짧았다.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제주 선수단의 충격 요법이었다.

제주는 최근 5경기 무승(1무4패)의 수렁에 빠졌다. 고비를 넘지 못하자 그나마 좋았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고참인 강준우(33)가 자진해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 고참이 솔선수범하자 후배들도 동참했다. 선수들의 행렬에 코칭스태프도 화답했다. 박동우 수석코치는 "이렇게 짧은 머리를 한게 20년 정도 된 것 같다"고 했다. 조성환 감독도 원래 짧은 머리를 더욱 짧게 잘랐다. 조 감독은 "머리를 잘라서 이길 것 같으면 1년 내내 대머리로 살겠다"고 농을 던진 뒤 "사실 내가 먼저 짧게 머리를 자르려고 했다. 그러면 코치나 선수들에게 부담이 갈 것 같았다. 솔선수범해서 다들 머리를 자른 모습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팠다. 내 잘못인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오늘 경기 전 라커룸 분위기가 비장했다. 선수들이 위축된 마음을 풀기 위해 평소보다 마음가짐을 단단히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킥오프 전 제주 선수들은 어깨동무하며 평소보다 오랜시간 대화를 나눴다.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였다. 제주 선수들은 강한 몸싸움도 불사하며 광주와 맞섰다. 원정경기였지만 경기 내내 광주를 압도했다. 하지만 결정력이 발목을 잡았다. 제주는 전반 2번의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다. 최전방에 포진한 까랑가가 모두 기회를 놓쳤다. 전반 9분 단독찬스에서 슈팅을 했지만 골키퍼에 막혔고, 43분에는 윤빛가람이 완벽히 가운데로 내줬지만 어이없는 실축으로 기회를 무산시켰다. 후반 1분에는 송진형의 패스를 받은 윤빛가람의 멋진 발리슈팅이 골키퍼의 선방에 맞고 나왔다.

득점에 실패한 제주는 후반 중반들어 광주의 반격에 고전했다. 제주는 포기하지 않고 몸을 날리며 광주의 공격을 막아냈다. 0-0으로 끝날 것 같았던 경기는 결국 제주에게 미소를 지었다. 후반 35분 중앙으로 돌파하던 로페즈가 오른쪽으로 달려오던 송진형에게 스루패스를 했고 송진형은 지체없는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평소 흥분하지 않는 송진형도 엠블럼에 키스를 하며 제주의 서포터스를 향해 뛰어가 기쁨을 표했다. 얼마나 제주가 승리를 원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제주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광주의 공세를 막아냈다. 결국 간절함이 통했다.


광주=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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