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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우리가 별르고 있는 팀이다. '병지삼촌'의 700경기 축포를 꼭 쏘고 싶다."
전남의 제주 징크스는 골 깊었다. 2012년 7월 21일, 0대6으로 대패한 후 3년간 단 한 번도 제주를 넘지 못했다. 최근 10경기 2무 8패, 6득점 23실점했다. 2013시즌 김병지가 전남 유니폼을 입은 후로도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김병지는 "700경기는 그저 한경기일 뿐이다. 내겐 팀 승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드시 잡고 싶은 경기였다. 지난해 9월 6일 제주 원정, 전남은 2대6으로 대패했다. 6실점은 '24년차 K리거' 김병지의 개인 최다실점이다. 김병지의 동갑내기 절친인 사령탑 노상래 전남 감독은 "초반부터 강공으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공언했다. 전남전을 앞두고 김병지의 마산공고 동기인 '절친' 조성환 제주 감독은 "친구의 700경기를 축하한다"면서도 "승부는 승부다. 3라운드 첫 경기다. 결코 물러서지 않고 맞불을 놓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김병지를 비롯한 전남 선수들은 700경기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입장했다. 김병지는 '기념 등번호' 700번을 달고 뛰었다. 1992년 9월 2일 현대-유공전에서 38번 등번호를 달고 데뷔전을 치렀던 '22세 청년' 김병지가 26일 제주전, '45년3개월18일'의 나이로. 700번째 그라운드에 나섰다. 전남은 '병지삼촌'에게 승리를 선물하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쳤다. 제주전은 전쟁이었다.
1-0으로 앞서던 전반 14분 김병지가 까랑가의 문전 헤딩을 두 손으로 막아냈다. 세월을 거스르는 슈퍼세이브, 관중석에선 "김병지!"를 연호했다. 전반 22분 제주의 프리킥 찬스, 윤빛가람의 날선 오른발이 번쩍 빛났다. 정확한 슈팅이 왼쪽 골망으로 빨려들었다. 동점골을 허용한 직후인 전반 24분 전남에 위기가 찾아왔다. 몸싸움이 치열했다. 몸을 던져서라도 '병지삼촌'에게 승리를 선물하겠다던 센터백 임종은이 정강이 부상으로 물러났다. 미드필더 이창민 역시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갔다.
김병지가 K리그에 데뷔한 1992년에 태어난, 이종호와 오르샤가 펄펄 날았다. 1992년생 후배들의 분투속에 승리를 지켜내는 것은 '주인공' 김병지의 몫이었다. 90분 내내 선방쇼를 펼쳤다. 전반 34분 문전 프리킥 위기에서 허범산의 왼발 땅볼 슈팅을 안전하게 잡아냈다. 전반 43분 로페즈의 기습 슈팅도 막아냈다. 후반 4분 제주의 신입 외국인선수 시로의 터닝 슈팅도 두손으로 막았다. 전남이 3년만에 제주에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통산 100경기 승리 후 200, 300, 400, 500, 600경기에서 모두 패했던 김병지가 마지막 기록이 될지 모를 700경기에선 활짝 웃었다. 700경기는 '힐링'이었다. 김병지와 전남을 옥죄던, 모든 징크스가 사라졌다.
광양=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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