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1992'김병지 700G,1992년생 이종호-오르샤 축포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5-07-26 20:52


2015 K리그 클래식 전남 드래곤즈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23라운드 경기가 26일 광양 축구전용구장에서 열렸다. 전남 이종호가 첫 골을 넣은 가운데 선수들이 김병지를 손가마 태우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날 경기에 출전한 전남 골키퍼 김병지는 1992년 울산 현대에서 처음으로 K리그 무대를 밟은 이래 24년 동안 선수생활을 이어오며 프로 7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광양=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7.26/

"제주는 우리가 별르고 있는 팀이다. '병지삼촌'의 700경기 축포를 꼭 쏘고 싶다."

지난 22일 FA컵 8강전 결승골을 터뜨린 '광양루니' 이종호는 골 욕심을 감추지 않았었다. "'병지삼촌'은 내게 멘토다. 축구뿐 아니라 인생의 롤모델이다. 삼촌도 어려운 가정형편속에 축구를 하셨고, 나 역시 힘든 환경을 이겨내고 축구를 해왔다. 삼촌과 나 사이에는 끈끈한 뭔가가 있다. 삼촌이 오신 후 내 축구가 발전했다. 삼촌이 우리 뒤에 계셔서 든든하다. 보답하고 싶다"

26일 오후 7시 전남 광양전용구장에서 펼쳐진 K리그 클래식 23라운드 전남-제주전, '김병지가 사랑하는 국가대표 후배' 이종호가 골 약속을 지켰다. 전반 4분 오르샤의 택배 크로스를 이어받아 문전에서 방향을 돌려놓는 헤딩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기쁨의 박수를 치는 '병지삼촌'을 향해 내달렸다. 스무살 어린 후배들이 'K리그의 살아있는 레전드' 김병지를 번쩍 들어올렸다. 전남은 전반 4분 이종호의 선제골, 전반 28분, 후반 9분 오르샤의 연속골에 힘입어 윤빛가람이 전반 22분 프리킥 골을 터뜨린 제주에 3대1로 승리했다.

전남의 제주 징크스는 골 깊었다. 2012년 7월 21일, 0대6으로 대패한 후 3년간 단 한 번도 제주를 넘지 못했다. 최근 10경기 2무 8패, 6득점 23실점했다. 2013시즌 김병지가 전남 유니폼을 입은 후로도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김병지는 "700경기는 그저 한경기일 뿐이다. 내겐 팀 승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드시 잡고 싶은 경기였다. 지난해 9월 6일 제주 원정, 전남은 2대6으로 대패했다. 6실점은 '24년차 K리거' 김병지의 개인 최다실점이다. 김병지의 동갑내기 절친인 사령탑 노상래 전남 감독은 "초반부터 강공으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공언했다. 전남전을 앞두고 김병지의 마산공고 동기인 '절친' 조성환 제주 감독은 "친구의 700경기를 축하한다"면서도 "승부는 승부다. 3라운드 첫 경기다. 결코 물러서지 않고 맞불을 놓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김병지를 비롯한 전남 선수들은 700경기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입장했다. 김병지는 '기념 등번호' 700번을 달고 뛰었다. 1992년 9월 2일 현대-유공전에서 38번 등번호를 달고 데뷔전을 치렀던 '22세 청년' 김병지가 26일 제주전, '45년3개월18일'의 나이로. 700번째 그라운드에 나섰다. 전남은 '병지삼촌'에게 승리를 선물하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쳤다. 제주전은 전쟁이었다.

1-0으로 앞서던 전반 14분 김병지가 까랑가의 문전 헤딩을 두 손으로 막아냈다. 세월을 거스르는 슈퍼세이브, 관중석에선 "김병지!"를 연호했다. 전반 22분 제주의 프리킥 찬스, 윤빛가람의 날선 오른발이 번쩍 빛났다. 정확한 슈팅이 왼쪽 골망으로 빨려들었다. 동점골을 허용한 직후인 전반 24분 전남에 위기가 찾아왔다. 몸싸움이 치열했다. 몸을 던져서라도 '병지삼촌'에게 승리를 선물하겠다던 센터백 임종은이 정강이 부상으로 물러났다. 미드필더 이창민 역시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갔다.

위기의 순간, '전남 신성' 오르샤 타임이 시작됐다. 전반 28분 스테보의 패스를 오른발의 오르샤가 이어받았다. 노려찬 슈팅이 수비진을 맞고 튕겨나오자 세컨드볼을 끝까지 노려찼다.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후반 8분 이번엔 '오르샤존'이 통했다. 날카로운 프리킥이 까랑가의 머리를 스치고 또다시 골망으로 빨려들었다. 오르샤와 김병지는 같은 회사 소속, '한솥밥 레전드'의 700경기에서 2골1도움으로 끝내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8호골, 7호 도움, 15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올시즌 목표 삼았던 공격포인트 15개를 조기 달성했다. 득점, 도움, 공격포인트 모두 리그 2위에 우뚝 섰다.

김병지가 K리그에 데뷔한 1992년에 태어난, 이종호와 오르샤가 펄펄 날았다. 1992년생 후배들의 분투속에 승리를 지켜내는 것은 '주인공' 김병지의 몫이었다. 90분 내내 선방쇼를 펼쳤다. 전반 34분 문전 프리킥 위기에서 허범산의 왼발 땅볼 슈팅을 안전하게 잡아냈다. 전반 43분 로페즈의 기습 슈팅도 막아냈다. 후반 4분 제주의 신입 외국인선수 시로의 터닝 슈팅도 두손으로 막았다. 전남이 3년만에 제주에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통산 100경기 승리 후 200, 300, 400, 500, 600경기에서 모두 패했던 김병지가 마지막 기록이 될지 모를 700경기에선 활짝 웃었다. 700경기는 '힐링'이었다. 김병지와 전남을 옥죄던, 모든 징크스가 사라졌다.
광양=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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