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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빛났다.
여자축구의 이번 성과는 흔히 남자축구과 비교된다. 국내 등록선수, 팀 숫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극히 취약하다는 점은 겉으로 드러난 비교 대상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딛고 남자축구가 48년 만에 일군 월드컵 첫승과 16강을 여자축구는 12년 만에 해냈다는 평가가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다른 측면을 살펴봐도 여자축구의 이번 성과는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남자축구가 16강 꿈을 이뤘던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상황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이번 여자월드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2002년과 비교가 안된다. 2002년 한국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당연히 관심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여자축구는 이번에 찬밥신세나 마찬가지였다. 미디어 리서치 전문기관 닐슨 코리아의 방송 시청률 집계를 살펴봤다. 지난 17일 16강행의 운명을 결정짓는 스페인전이 KBS 2TV를 통해 중계됐을 때 시청률은 4.7%였다. 같은 시간대(오전 8∼10시) 타 공중파 프로그램인 인간극장(11.9%), 아침마당(5.9%·이상 KBS1), 이브의 사랑(9%), 생방송 오늘아침(6.8%·이상 MBC), 황홀한 이웃(11.7%·SBS) 등에 비해 크게 낮았다. 그나마 오전 8시 경기였기에 시청률이 좋은 편이었다. 정작 16강전이 오전 5시에 열린 22일에는 되레 급락했다. KBS2 시청률은 2.4%, SBS는 1.5%에 불과했다. 오전 5시58분부터 7시46분까지 방송된 MBC 뉴스투데이 1,2부의 시청률은 각각 2%, 5.1%였다. KBS 뉴스광장 1, 2부의 시청률(7.7%, 12.3%)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았다. 여자축구는 운도 따르지 않았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연일 보도되고 있던 시기라 뉴스에 대한 관심도에서도 밀렸다. 2002년 16강 진출이 이뤄졌던 시기의 시청률은 여기에 비교할 필요도 없다. 당시는 시청률을 떠나 전국 거리응원에 나선 국민만 해도 수백만명을 훌쩍 뛰어 넘었다. 폴란드와의 조별예선 첫 경기 당시 전국 거리응원 인파가 52만명이었는데 이탈리와의 16강전에서는 42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스페인과의 8강전(500만명), 독일과의 준결승(700만명)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여기에 한국이 2002년 사상 첫 16강을 확정짓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 선수단을 직접 만나 격려했고, 이튿날 병역혜택을 위한 병역특례법 시행령 개정 방침이 발표됐다. 이에 대한 대다수 국민 여론은 당연한 혜택으로 수긍했다. 2002년은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이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한다 치더라도 여자축구는 이번에 처절한 무관심과도 싸워야 했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남자축구는 2002년 16강을 뛰어넘어 4강 신화까지 썼다. 분명히 여자축구에 비해 호평을 받을 일이다. 게다가 여자축구는 FIFA 랭킹 3위 프랑스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남자축구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우승 후보국들을 잇달아 물리치는 기적을 일궈냈다. 압도적인 응원과 전폭적인 지원이 신바람을 내게 하기도 했지만 선수 가동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만 하더라도 남자축구는 베스트11을 차질없이 가동했고,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가 교체 멤버로 투입됐다. 반면 여자축구는 이번에 부상의 악재로 인해 정상 가동을 하지 못했다. 여민지가 대표팀 소집에 응하지도 못했고, 또다른 대들보 지소연은 프랑스와의 16강전에 아예 빠졌다. 박은선 역시 부상 이후 회복이 느려 정상 컨디션을 보이지 못했다. 핵심 선수가 줄줄이 이탈한 가운데 16강 대진운도 사실 없었다. 한국 여자축구의 FIFA랭킹은 18위. 이번 여자월드컵 16강 팀 가운데 톱10에 드는 나라가 독일(1위), 미국(2위), 프랑스(3위), 일본(4위), 스웨덴(5위), 잉글랜드(6위), 브라질(7위), 캐나다(8위), 호주(10위) 등 9개국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상대는 스위스(19위), 콜롬비아(28위), 카메룬(53위) 정도였는데 하필 프랑스를 만났다. 일본 언론은 '한국의 조편성 운이 16강 가운데 최악'이라고 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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