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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이었다.
좁은 호텔방에선 한국에서 건너 온 여자 축구 지도자들과 거의 매일 밤 토론이 벌어졌다. 여자 축구 활성화를 위한 제언이 쏟아졌다. 미국을 넘지 못했지만 여자 축구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 축구가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미국 여자월드컵에 첫 출전할 때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라 '환상'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의 벽은 높았다. 3전 전패, 1득점-11실점으로 쓸쓸하게 짐을 쌌다. 한계가 있었다. 12년 전 여자대표팀은 축구가 두 번째 전공이었다. 육상, 수영, 필드하키 출신들이 축구로 말을 갈아탔다.
2010년 8월 '지소연 세대'는 또 한 번 일을 냈다. 독일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했다. 지소연은 무려 8골을 터트리며 실버슈(득점 2위)와 실버볼(MVP 2위)를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당당하게 등장했다.
그 해 '언니의 반란'은 전초전이었다. 한 달 뒤 한국 축구사가 새롭게 작성됐다. 2010년 9월 25일, 트리니다드토바고의 해슬리 크로포드 스타디움이었다. FIFA 17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한국이 정상에 올랐다. 결승전에서 일본과 만나 연장 혈투 끝에 3대3으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했다. FIFA 주관 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여민지 세대'가 등장했다. 여민지는 골든볼(MVP)과 골든슈(득점왕)를 휩쓸었다. "지소연 언니가 실버볼을 들고 올라가는 것을 봤다. 골든슈를 들고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현실이 돼서 행복하다." 여민지의 감격이었다.
한국 사회가 떠들썩했다. 열악한 여자 축구의 현실도 도마에 올랐다. 이곳저곳에서 지원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열정은 얼마가지 못해 잊혀졌다. 다시 음지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일본은 2011년 독일 여자월드컵을 제패했다. 물론 한국 여자축구도 성장했다. 그러나 체계적이지 못한 지원에 기회를 놓쳤다. 여자 축구는 이의수 전 여자축구연맹 회장 시절 본궤도에 올랐다. 신선한 아이디어로 여자 축구의 체질개선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후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세상은 변하는데 형식을 위한 형식에 얽매여 새로운 탈출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나마 선수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했다. 첼시 레이디스에 진출한 지소연은 최근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가 수여하는 '올해의 여자선수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받았다. 지소연과 여민지로 이어지는 황금세대와 언니 세대들이 융합돼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다. 12년 만의 월드컵 무대도 열렸다. 한국은 지난해 아시안컵에서 4위를 차지해 월드컵 티켓을 따냈다.
드디어 그들의 도전이 시작된다. 태극낭자들은 20일 장도에 오른다. 캐나다에서 열리는 2015년 여자월드컵에서 한국은 브라질, 스페인, 코스타리카와 함께 E조에 속해있다. 6월 10일 첫 발을 뗀다. 브라질과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이어 코스타리카(14일), 스페인(18일)과 차례로 격돌한다. 아쉬움은 있다. 황금세대의 한 축인 여민지가 16일 연습경기에서 왼무릎 십자 인대가 파열돼 낙마했다. 18일 월드컵출정식에선 여민지의 이탈에 지소연이 눈물을 쏟아냈다. "여민지의 몫까지 뛰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한국의 1차 고지는 16강 진출이다. 24팀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는 각 조 1, 2위팀과 조 3위 중 상위 4개팀이 16강에 진출한다. 변수는 많다. 16강 이후에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축구판에선 "월드컵 우승은 남자보다 여자가 빠를 것"라는 말이 있다. 여자 축구가 세계적인 레벨에 더 근접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자 축구선수로 살아가는 일이 외로웠던 것 같다." 월드컵출정식의 또 다른 단면이었다. 전가을의 눈물이다. 한국 여자 축구의 현실이었다. 그 울분을 그라운드에 토해내자. 16강을 넘어 8강, 4강…, 2010년의 환희가 재연되길 바란다. 또 한 번의 기적은 분명 일어날 수 있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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