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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짜릿'승리 전남 라커룸 풍경 'FA컵 최고의 명승부!'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5-05-14 12:02



13일 밤, 수원월드컵 경기장에서 펼쳐진 수원과 전남의 FA컵 32강전은 명불허전이었다.

120분의 불꽃 튀는 명승부에 봄밤 축구팬들이 환호했다. 후반 17분, 0-2로 밀리던 상황, 전남의 패색이 짙었다. 전남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염기훈과 정대세의 발끝은 날카로웠다. 모두가 고개를 내젓던 순간, 오르샤의 질주가 시작됐다. 빨랫줄같은 중거리포로 한골을 따라붙었다. 노상래 전남 감독은 준비된 카드, '왼발 에이스' 안용우를 투입했다. 후반 42분, 종료 3분을 남겨둔 프리킥 찬스, 골키퍼 김병지가 하프라인까지 올라와 묵직한 킥을 날렸다. 최장신 수비수 임종은의 볼을 이어받은 안용우의 왼발 끝은 필사적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교체카드는 적중했다. 2-2 상황, 연장 승부에 돌입했다. 연장 전반 11분, 전남은 이상호에게 또다시 골을 허용했다. 오른쪽 윙어, 풀백으로 뛰던 이지민이 고통을 호소하며 나간 직후다. 교체카드가 마땅치 않았고, 미드필더 김영욱이 난생 처음 사이드백으로 섰다. 수비과정에서 실수가 나왔다. 2-3, 이번에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연장 후반 시작과 함께, 노 감독은 회심의 카드를 빼들었다. '최장신 센터백' 임종은을 '최전방 공격수'로 올렸다. '용빼는 용병술'이 거짓말처럼 통했다. 연장 후반 2분, 레안드리뉴가 찔러넣은 정확한 침투패스를 받은, 임종은이 수비라인을 뚫어내며 거침없이 쇄도했다. 왼발 동점골을 밀어넣었다. 양팔을 펼쳐들며 뜨겁게 환호했다. '수트라이커(수비수+스트라이커)'의 미션을 200% 완수했다. 3대3 무승부는 결국 승부차기로 넘어갔다. K리그 최다 출전 '25년차 레전드' 수문장 김병지의 관록이 빛났다. "삼촌이 하나는 무조건 막을게, 편안하게 자신감 있게 차."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병지삼촌'은 약속대로 첫 키커, 카이오의 킥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2번의 동점골을 밀어넣으며, 승부차기까지 온 전남은 이미 멘탈에서 상대를 압도했다. 5대3, 승부차기에서 승리했다. 전남이 짜릿한 역전드라마로 16강 막차 티켓을 따냈다.

이날 전남의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집중력에는 승리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2-2까지는 따라잡을 수 있다 해도, 연장 승부에서 3-3까지 따라잡는 경우는 드물다. 올시즌 리그에서 전북을 꺾은 유일한 팀, 22경기 무패를 끊어낸 팀, 노상래의 전남이 또 한번 진가를 드러냈다. 노 감독은 "쥐가 나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물러서지 않고 투혼을 발휘해줬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런 경기는 나오기는 힘들다. 3대3까지 쫓아간 분위기를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고 싶다"고 했다. 노 감독은 조용하지만 치밀한 전략가다. 수원전을 앞두고 교체카드, 좋은 상황, 안좋은 상황의 전술, 다양한 승부처를 꼼꼼히 체크했다. 수원전에서 후반 중반 이후 승부수를 생각했고, 이 전술은 적중했다. 승부차기에 대비해 명단, 순서까지 이미 다 적어뒀다. '준비된 승리'였다.

전남은 전북을 꺾은 후 직전 광주, 대전전에서 1무1패로 저조했다. 수원과의 FA컵 이틀 후 주말 서울 원정을 앞두고 노 감독의 고민은 깊었다. 스테보, 현영민 등 공수의 핵을 빼는 결단을 내렸다. '패기'와 '끈기'로 밀어붙여보기로 했다. 전북전 첫 풀타임 데뷔전에서 맹활약한 이슬찬, 측면에서 날선 모습을 보여준 이지민, 전북전 멀티골을 터뜨린 미드필더 이창민 등 1993~1994년생 어린 선수들을 믿고 썼다. 최후방에선 1970년생 레전드 '병지삼촌' 김병지가 굳건히 버텼다.

노 감독의 영민한 용병술은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후반 1-2 상황에서 동점골을 노린 안용우 투입 타이밍은 더없이 적절했다. 안용우가 그라운드에 들어선 후 공격의 물줄기가 바뀌었다. 임종은을 활용한, 허를 찌른 공격술도 잇달아 통했다. '꽃미남 수트라이커' 임종은은 중요할 때 한방 해주는 선수다. 2013시즌 전남의 강등 탈출을 확정짓는 골도 그의 발끝에서 나왔다. 문전에서 침착한 움직임, 공중볼 장악력, 볼 컨트롤 능력을 고루 갖췄다. '전남 승리의 일등공신' 임종은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반전 16강행'에 비결, 끝까지 따라붙는 전남의 힘에 대해 '스승' 노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감독님이 경기전에도 경기중에도 항상 강조하시는 게 '골을 먹을 수도 있다. 절대 포기하는 모습은 보이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를 응원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프로로서 예의가 아니다라고 하신다"고 했다. 팬들을 위한, 포기하지 않는 축구가 통했다. 전남은 16강에 올랐다. 경기후 라커룸은 우승팀을 방불케 했다. 이슬찬, 임종은 등 선수들은 한목소리로 "FA컵 우승!"을 외쳤다. "시즌 초부터 우리의 목표는 FA컵 우승이었다"고 했다. '소리없이 강한 축구'를 추구하는 '캐넌슈터' 노 감독의 대답은 신중했다. "선수들과 같은 꿈을, 마음속에만 고이 품고 있겠다. 미리 말로 하지 않겠다"며 웃었다. 1997년 FA컵 득점왕, 최다골(6골) 기록에 빛나는 '전남 레전드' 노상래 감독이 전남의 FA컵 최다우승(포항 스틸러스·4회) 꿈을 품기 시작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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