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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염기훈-이상호, 3인3색 슈퍼매치 정복기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5-04-19 17:37



2015년 첫 슈퍼매치는 화려했다. 수원이 서울 골문에 5골을 꽂아 넣고 '빅버드(수원 홈구장의 애칭)'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대승이었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중원의 '시소 플레이'로 경기 흐름을 지배했다. 슈퍼매치의 열세를 뒤집겠다는 선수단의 의지는 부상으로도 막지 못했다. 슈퍼매치에 맞춘 로테이션 구성도 완벽했다. 그 중심에 '캡틴' 염기훈과 '대세' 정대세, '슈퍼매치의 사나이'로 거듭난 이상호가 있었다. 3인3색 활약에, 수원은 올시즌 첫 슈퍼매치를 완벽하게 정복했다.


알고도 못막는 왼발+부상 투혼, 염기훈

요즘 K리그 최고 '핫 플레이어'는 염기훈이다. 왼발의 위력은 알고도 막지 못할 만큼 강력하다. 염기훈의 날카로운 킥은 슈퍼매치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염기훈은 이날 1골-2도움의 활약을 펼쳤다. 1-1로 맞선 후반 3분 정대세의 스루 패스를 받아 왼발로 서울의 골망을 흔들었다. 이어 4분 뒤 날카로운 코너킥으로 이상호의 헤딩 골을 도왔고, 후반 44분 그라운드를 가르는 전진 패스로 정대세의 쐐기골을 만들어냈다. 클래식 6경기 연속 공격포인트(4골-5도움) 행진이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까지 더하면 연속 경기 공격포인트는 8경기(5골-6도움)로 늘어난다. 그런데 염기훈의 슈퍼매치 선발 출전은 부상 투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슈퍼매치 하루 전, 수원은 비상이 걸렸다. 염기훈이 팀 훈련 중 왼발목을 접질린 것. 부어오른 발목을 보며 서 감독은 염기훈의 출전을 사실상 포기했다.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한 결과 다행히 인대 손상은 없었다. 통증이 여전했지만 염기훈은 출전을 자청했다. 왼발 킥이 주무기인 염기훈에게 왼발목 부상은 치명적이었지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염기훈은 종횡무진 서울의 좌우 측면을 파고 들었고, 세 번의 왼발 킥으로 서울의 수비를 폭격했다. 경기를 마친 염기훈은 "경기 할 때는 통증이 사라졌는데 끝나고 나니 다시 통증이 온다"고 말했다. 백마디 말보다 강력했던 염기훈의 부상 투혼은 수원 선수단의 의지를 깨웠다. 알고도 못막는 왼발 킥은 노력과 자신감의 결정체였다. 팀 훈련이 끝난 뒤 고종수 수원 코치와 40분 넘게 왼발 킥 훈련을 따로 하는 염기훈은 "세트피스나 프리킥에서 워낙 자신감이 있다. 킥을 하는 순간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보니 킥의 세기와 각도가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독기 오른 '만능 플레이어', 정대세

올시즌 정대세의 '특급 도우미' 변신은 수원의 최대 소득 중 하나다. 정대세는 슈퍼매치 이전까지 5도움을 수확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는 골맛을 봤지만 정규리그 성적표는 0골-2도움이었다. 슈퍼매치에 앞서 서 감독은 정대세의 '헌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대세가 올시즌 리그에서 골을 못넣어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올시즌 성숙해지고 팀플레이를 하면서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어시스트가 많다. 득점을 하라고 압박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속내는 달랐다. 서 감독은 정대세의 득점을 위해 '밀당(밀고 당기기)' 작전을 펼쳤다. 앞선 클래식 2경기에서 선발 출전을 시키지 않았다. 독기를 품게 하려는 의도였다. 정대세도 슈퍼매치를 기다렸다. 팀 훈련이 끝난 뒤에도 코칭스태프와 함께 슈팅 100개 이상을 소화했다. 슈퍼매치에 선발 출격한 정대세는 먼저 '특급 도우미'로 팀플레이에 집중했다. 전반 22분 헤딩 패스로 이상호의 선제골을 도왔고, 후반 3분에는 염기훈에게 정확한 패스를 찔러줘 일찌감치 2도움을 올렸다. 슈팅 연습 효과는 후반에 중반 이후에 나타났다. 3-1로 대세가 기울자 정대세는 후반 22분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리그 첫 골을 뽑아냈다. 후반 44분 득점까지 더해 멀티골의 겹경사를 맞았다. 잠시 잊었던 킬러 본능을 되찾은 정대세는 "내 생애 최고의 경기였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경기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정대세는 올시즌 도우미로 변신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만의 생존 방식이었다. "경기에 뛰어야만 골을 넣을 수 있다. 초반에 도움(공격 포인트)을 올리면서 승리하면 자연스럽게 감독님이 신뢰를 보내주시고 선발로 뛰면 득점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까지 도움만 기록했는데 골까지 넣어서 기분이 좋다." 욕심을 버리고 팀플레이에 집중하다보니 얻은 것도 많았다. 그는 "경기에서 여유가 생겼다. 이전에는 슈팅을 할 때 힘을 너무 많이 줬다. 하지만 패스를 먼저 생각하다보니 슈팅할 때 힘을 뺄 수 있게 됐다. 힘을 빼니 슈팅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대세는 슈팅 세기가 아닌 골키퍼의 타이밍을 빼앗는 정교한 슈팅으로 두 골을 만들어냈다.


부활의 신호탄 쏜, 이상호

산토스의 부상에 서 감독은 이상호 카드를 고민없이 뽑아들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은선이 뒤에 포진한 가운데 활동량이 풍부한 이상호와 권창훈이 위 아래로 번갈아 오가는 '시소 플레이'를 구상했다. 서 감독의 선택은 주효했다. 감기 몸살로 울산전을 건너 뛴 이상호는 슈퍼매치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이상호는 2골-2도움을 올린 정대세의 활약에 가려져 빛을 받지 못했지만, 대승의 주춧돌을 놓았다. 0-0으로 맞선 전반 22분 다이빙 헤딩으로 0의 행진을 깬데 이어 2-1로 앞선 후반 7분 다시 헤딩 슈팅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2009년에 수원에 입단한 이상호는 2골을 더해 정대세와 함께 4골로 수원 현역 선수 중 슈퍼매치 최다득점자로 우뚝 섰다.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이다. 이상호는 2007년 20세 이하 대표팀의 일원으로 지금은 A대표팀의 주축이 된 기성용(스완지시티) 이청용(볼턴) 박주호(마인츠)에 못지 않게 큰 기대를 받았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울산에서 수원으로 이적한 뒤 2011년(6골-3도움)을 제외하고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슈퍼매치가 부활의 서막이 될 수 있다. 측면과 중앙 공격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이상호가 슈퍼매치 같은 활약을 펼쳐준다면 이상호를 중심으로 한 '시소 플레이'는 서 감독의 강력한 공격 옵션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서 감독은 "상호에게 슈퍼매치에 초점을 맞추고 준비하라고 했는데 잘해줬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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