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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은 없었다.
시작에 불과하다. 설연휴 기간 동안 굵은 땀방울을 흘린 최용수 서울 감독은 이미 하노이전을 잊었다. "56경기 중에 한 경기가 지났을 뿐이다. 다음 경기에서 연속성을 갖고 이 같은 흐름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H조는 '역대급 죽음의 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과 2014년 ACL 챔피언 광저우 헝다(중국)와 웨스턴 시드니(호주)가 위치해 있다. 서울은 두 팀 모두에 아픔이 있다. 2013년에는 광저우에 덜미를 잡혀 ACL에서 준우승했고, 지난해에는 웨스턴 시드니에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같은 조인 일본의 가시마 앤틀러스도 복병이다.
첫 출발부터 난적을 만난다. 서울은 25일 오후 9시(한국시각) 원정에서 광저우와 ACL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원정길의 화두는 '설욕 여행'이다. 서울은 23일 광저우로 출국한다. 2년 전은 간발의 차였다. 서울은 홈 1차전에서 2대2, 2차전 원정에서 1대1로 비겼다. 2무였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에서 밀려 아시아 첫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
광저우는 과감한 투자로 ACL에서 영원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적장이 바뀌었다. 이탈리아 출신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애제자인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42)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칸나바로 감독은 현역 시절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선 리피 감독의 휘하에서 주장으로 뛰며 우승을 선물했다. 그는 그 해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칸나바로 감독은 인터밀란,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 등 명문 클럽에서도 활약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올시즌 광저우 사령탑에 오른 그는 취임 일성에서 "ACL 우승컵을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최 감독은 지난해부터 언젠가는 광저우와 다시 만나 설욕할 것이라고 했다. 만남이 일찍 성사됐다. 두려움은 없다. 그는 "광저우는 현 전력상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다. 원정에서 첫 경기라 불리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어떤 팀인지를 보지 않을 것이다. 공은 둥글고, 축구는 팀으로 한다. 응집력을 유지해서 선수들이 각자의 역할을 한다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칸나바로 감독과의 만남도 특별하다. 최 감독은 현역 시절인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칸나바로 감독과 대결했다. 당시 이탈리아가 2대1로 승리했다. 한국과 이탈리아는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최 감독은 "(칸나바로 감독은) 나를 마크를 했던 선수다. 리피 감독이 바통터치를 센 사람과 했다. 당시 칸나바로와 경기 중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며 특유의 넋두리를 늘어놓은 후 "이제 상대 감독으로 나타났다. 인생은 돌고 돈다. 과거의 관계를 떠나서 K리그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맞붙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최 감독은 약속대로 다시 변신했다. 지난해의 스리백을 접고, 포백으로 첫 발을 뗐다. 4-4-2 시스템을 근간으로 짜임새 넘치는 공수밸런스를 자랑했다.
광저우전은 피할 수 없는 일전이다. '설욕 여행'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3시즌 연속 ACL 16강 진출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