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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인터뷰]류승우"손흥민형처럼 길을 여는 선수 되고싶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5-01-23 05:15





푸른색 패딩점퍼를 입은 앳된 소년이 마을버스에서 내리더니 날아오르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총총 뛰어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레버쿠젠이 선택한 남자' 류승우(22)였다. 2013년 후반기 이후 류승우는 줄곧 '핫이슈'였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중거리 골로 화제가 됐고, 도르트문트의 러브콜을 거부해 화제가 됐고, 제주에 입단한 직후 레버쿠젠으로 임대되며 또다시 화제가 됐다. 올 시즌 브라운슈바이크에 재임대된 후 잊혀질 뻔했던 이 남자는 12경기에서 4골을 몰아치는 활약으로 또다시 이슈의 중심에 섰다. 독일행 1년이 되던 2015년 12월 말, 레버쿠젠 완전이적, 브라운슈바이크 6개월 임대 연장 소식을 전했다.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출국(7일)을 사흘 앞둔 1월 초, 부산의 한 재활센터에서 류승우를 만났다. 정작 핫이슈의 주인공은 1년반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귀국 후 매일 아침 김해 집에서 1시간 거리인 부산 동의과학대학교 스포츠재활센터로 지하철, 버스를 갈아타고 출근하는 일상의 습관들을 똑같이 이어가고 있었다.

'연습벌레' 새해 첫 주말도 운동

전남드래곤즈에서 9년간 트레이너로 일한 '베테랑' 허 강 팀장과 햇수로 5년째, 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류승우에게 '재활센터'는 '좋은 습관'이다. 수원고, 중앙대 시절 내내 류승우를 치료해온 허 팀장은 "승우는 다쳤을 때만 오는 게 아니라 평소에 그냥 놀러오듯 온다. 현재 부상부위도 없고, 컨디션도 좋다. 진정한 컨디셔닝은 부상했을 때가 아니라 평소에 하는 것이다. 연말 연시에도 매일 찾아와, 몸을 풀고 갔다"고 귀띔했다.

류승우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관리할 줄 아는 프로다. 시즌 후반기를 앞두고 몸 만들기를 쉬지 않았다. "정지한 채 하는 웨이트트레이닝만로는 부족하다. 축구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힘을 쓸 수 있는 근육과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허 팀장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휴식기인 만큼 격렬한 운동 대신 몸의 중심을 강화하는 코어 훈련, 밸런스를 강화하는 훈련에 집중했다. 가능하면 '좀더 불편한' 상태에서 공을 차는 연습에 몰두했다. 류승우는 창의적이었다. 허 팀장이 제안한 운동법을 응용해 자신만의 '아주 불편한' 운동법을 계발해 내더니, 고무밴드를 허리에 감은 채 쉴새없이 중심을 잡고, 힘을 조절하며, 움직였다.

'리틀 황새' 고무열(24·포항)과도 올겨울 재활동기로 만났다. 2013년 K리그 영플레이어상에 빛나는 고무열은 지난해 부상의 시련을 겪었다. 11월 오른쪽 발목 수술 후 독한 재활에 매달리고 있다. 새시즌을 앞두고 휴가를 기꺼이 반납한 고무열과 류승우는 2주간 동고동락했다. 못말리는 '연습벌레들' 덕분에 허 팀장의 재활센터는 새해 첫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재활센터에서 처음 만났지만 치열한 프로끼린 통했다. 포항 소속의 '20세 이하 대표팀' 문창진 이야기부터 K리그, 빅리그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공격수 부재를 고민하는 대한민국, 최전방 축구청년들의 열정은 인상적이었다.

독일에서의 치열했던 1년은…

마음으로 꿈꾸던 독일과 몸으로 부딪힌 독일, 어떻게 달랐을까. 류승우는 "생갭다 해볼 만하겠다 싶을 때도 있었고, 정말 어려운 것도 많구나 좌절할 때도 있었다"고 답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2부리그 브라운슈바이크에서의 좌절이었다. "9월 임대 직후 팀 스타일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이삿짐을 직접 옮기느라 피곤이 누적됐고, 개인운동도 많이 하지 못한 상태였다. 준비없이 첫 경기에 나섰다. 적응이 안됐다. 감독님도 성급하다는 판단을 하신 듯했다." 이후 류승우는 2달 가까이 선발에서 제외됐다. "이제 와 생각하면 적응할 시간을 주신 것인데, 2부리그도 못뛴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악바리 류승우는 이를 악물었다. 숙소인 레지던스호텔 뒤 운동장에서 날마다 개인훈련에 몰입했다. 10월26일 교체로 투입된 첫 경기 1860뮌헨전에서 브라운슈바이크는 1년만의 원정승리(2대1승)를 맛봤다. 이후 선발 기회가 이어졌다. 중앙, 섀도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중용되며 류승우는 날개를 달았다. "스피드가 좋거나 피지컬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중앙에서 프리롤로 원하는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더 잘 맞는다"고 분석했다.

11월2일 알렌전(2대1 승) 데뷔골 장면은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 "부모님이 오신 후 첫경기였고, 홈경기여서 더욱 기뻤다." 기회를 반드시 잡겠다고 다짐한 류승우는 일주일만인 11월9일 에르츠헤버그 아우에전에서 연속골을 터뜨렸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알기 때문인지 팀 동료들이 엄청 축하해줬다"며 웃었다. 동갑내기 1993년생 노르웨이 공격수 니엘손(8골)과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류승우는 "힘도 있고 골도 많이 넣고 잘 맞아서 재밌게 축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류승우는 3경기에서 침묵했다. 우니온베를린전(1대1 무) 3호골 직후 토르스텐 리베르크네흐트 감독에게 달려가 안긴 세리머니에는 사연이 있었다. "단독찬스, 결정적인 기회를 많이 놓치면서 부담감이 커졌다. 우니온베를린전을 준비하는데 감독님께서 골대 앞에서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주셨다. 집중해서 해보라고 격려하셨다. 누가 봐도 나를 배려한 훈련이었다." 실전에서 골 장면은 재현됐다. 감독의 믿음에 골로 보답했다.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선 교체 1분만에 골맛을 봤다. 특유의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크로스가 올라오는 순간, 골키퍼가 놓칠 수도 있다고 직감했다. 본능적으로 발을 갖다댔다."

후반기 목표도 또렷하게 정했다. "브라운슈바이크에서 10골까지 채우고 싶다. 10골을 넣고, 전경기에 출전하고, 팀이 승격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브라운슈바이크에서의 활약은 레버쿠젠 연착륙을 위한 시작점임을 잘 알고 있다."레버쿠젠 공격수로서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많다. 냉정하게 말해 부족하다. 6개월 동안 경험을 쌓고 노력한다면 못할 일은 아니다."

"손흥민 형처럼 길을 여는 선수 되고 싶다"

독일 진출 직후 레버쿠젠에서 '선배' 손흥민과 짧게 한솥밥을 먹었다. "(손)흥민이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흥민이형은 정말 대단하다. 인정 받는 팀 에이스"라고 했다. "처음 레버쿠젠에서 함께하며 즐겁게 지냈고 많이 배웠다. 형이 통역도 해주고 밥도 사주고 챙겨주면서 이야기도 많이 해줬다. 함께 뛸 기회가 없었던 점이 너무 아쉽다"고 했다. "슈팅이나 모든 면에서 아직까지 흥민이형과 비교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낮추면서도 "흥민이형이 길을 잘 열어놓았기 때문에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 역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우리가 길을 잘 열어야 한국선수들이 더 많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태극마크의 꿈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대표팀은 소속팀에서 열심히 한다면 기회가 올 것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발전해야 한다. 발전하는 것이 목표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발맞출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향한 기대는 감추지 않았다. "19세 20세 대표팀에서 같은 친구들, 같은 선생님과 오랫동안 발을 맞춰왔다. 올림픽은 가장 간절하고 가장 나가고 싶은 대회다. 많이 발전해서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다. 각자 소속팀에서 발전한 모습으로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좋은 성적이 가능할 것이다."

류승우는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지난 7일 브라운슈바이크에 복귀했다. 2015년 꿈을 향한 축구여정이 다시 시작됐다.
부산=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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