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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이 오르기 전이었다.
"전 경기에서 100%를 보여준다면 1월 31일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여정은 최악이었을 정도로 힘겨웠다. 오만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1대0으로 승리하며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기쁨도 잠시, 김창수(가시와)와 이청용(볼턴)이 부상했다. 이청용은 오른 정강이에 실금이 가 대회를 접었다. 가혹한 운명이었다. 줄감기도 한국 선수단을 강타했다. 손흥민(레버쿠젠) 구자철(마인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등이 전력에서 이탈했다. 조별리그 2차전에서 쿠웨이트를 1대0으로 꺾었지만 나사 풀린 경기력에 고개를 숙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우린 더 이상 우승후보가 아니다"라는 말로 괴로움을 토로했다. 55년 만의 우승 도전이라는 말도 쏙 들어갔다. 기자회견에서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반전이 있었다. 개최국 호주를 1대0 꺾었다. 하지만 구자철을 부상으로 잃었다. 그래도 빛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선수단 분위기도 바닥을 찍고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22일 또 다른 선물을 내놓았다. 4강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호주아시안컵에서 4강 진출을 이끌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사령탑으로 연착륙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시대의 요구와 맞물려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현역 시절의 슈틸리케는 화려했다. 스페인 프라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다. 미드필더와 수비를 넘나들었다. 외국인 선수상을 무려 4차례나 수상했다. 베켄바워의 후계자로 주목받았고, 10년간 독일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A매치 42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지도자로는 빛을 보지 못했다. 1988년 은퇴 이후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이후 스위스와 독일 등에서 클럽 감독으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독일대표팀 수석코치와 코트디부아르 감독도 역임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카타르리그의 알 사일리아와 알 아라비 감독을 지냈다. 하지만 사령탑으로의 길은 선명하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슈틸리케 감독을 '숨겨진 원석'으로 판단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4강으로 화답했다. 위기관리능력이 빛을 발했다.
여전히 갈 길은 남았다. 그래도 분위기는 최고조다. 슈틸리케 감독은 바람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4강전을 넘으면 1월 31일 결승전까지 호주에 머무를 수 있다. 지난해 10월이었다. 그는 첫 발걸음에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다고 했다. 팬들의 가슴에 와 닿는 축구, 이기는 경기를 해야한다고 했다. 한 가지는 이룩했다. 곡예비행 중에도 이기는 경기를 했다.
한국 축구는 1956년과 1960년 1, 2회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정상과 인연이 없었다.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두 고개가 남았다. 슈틸리케호는 26일 오후 6시 시드니에서 이란-이라크 승자와 4강전을 치른다. 슈틸리케 감독이 우승컵에 선물할 경우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최고의 외국인 감독으로 기록될 수 있다. 최고가 될 기회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