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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봐야 실감이 날 것 같아요."
전북은 무덤덤 했다. 지난 제주 원정 승리로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남의 집이었던 터라 '뒷풀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시즌 종료까지 3경기가 남아 있는 상황도 우승의 기쁨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홈 팬들의 환호 속에 우승 트로피를 들기 전까지 전북에겐 '우승'이 아니었다.
1년 만에 뒤바뀐 운명, 웃음꽃 핀 전주성
묘한 만남이었다. 포항은 지난해 10월 전북과의 FA컵 결승전서 승부차기 혈투 끝에 승리한 뒤 리그 우승까지 잡았다. 전북전 승리가 사상 첫 더블(리그-FA컵 동시제패)의 보약이 됐다. 전북은 지난 8월 16일 열린 리그 21라운드에서 2위 포항을 2대0으로 완파하면서 올 시즌 정상 정복 기틀을 다졌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포항전이 우승의 분기점이었다"고 돌아보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황선홍 포항 감독은 "(우승 세리머니의) 들러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승리 의지를 불태웠다.
전북 구단은 선수들이 입장할 때에 맞춰 그라운드에 2009년, 2011년 우승 당시 유니폼이 그려진 통천을 세웠다. 그 가운데 별이 3개 달린 올 시즌 유니폼이 섰다. 전북 선수들은 가족의 손을 잡고 그라운드로 걸어 들어왔다. 한 시즌간 녹색 유니폼을 입고 뛴 선수, 그들을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가족들에 대한 구단의 배려였다. 그라운드에 입장한 미드필더 신형민은 어린 딸이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아 잠시 애를 먹기도 했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 중앙 관중석에는 폭죽, 북쪽 관중석에서는 휴지폭탄이 하늘을 수놓았다. 축제의 밥상을 차리는 일만 남았다.
멋쩍은 도움과 선방쇼, 그리고 대기록
전북은 초반부터 포항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카이오 레오나르도 이승기 이재성으로 짜인 공격라인은 빈틈이 없었다. 결국 전반 27분 이승기가 포항 수비수 김원일에게 페널티킥을 얻어내면서 골찬스를 잡았다. 키커로 나선 레오나르도는 슛을 시도할 듯 하다 왼쪽으로 살짝 밀었다. 골키퍼 김다솔이 중심을 잃고 쓰러진 사이, 쇄도하던 카이오가 오른발로 득점을 마무리 하면서 전북이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상황이 애매했다. 페널티킥에선 키커 외엔 페널티에어리어 내에 다른 선수가 있어선 안된다. 하지만 레오나르도가 킥을 시도하던 순간, 카이오의 오른발은 페널티에어리어 안쪽에 있었다. 하지만 우상일 주심은 그대로 득점을 선언했다. 카이오의 득점을 도운 레오나르도(10도움)는 전반기만 치른 뒤 아랍에미리트(UAE) 알아인으로 이적했음에도 반 년간 도움 선두를 달리던 이명주(9도움)를 밀어내고 선두로 올라섰다.
1골 뒤진 채 후반에 들어선 포항은 강수일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전북에는 수호신 권순태가 버티고 있었다. 앞선 7경기를 모두 무실점으로 막아냈던 권순태는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항의 공세는 거세졌지만, 슛은 모두 권순태의 손에 걸렸다. 이날 승리로 전북은 8경기 연속 무실점 연승에 도달했다. 2008년 수원이 세운 최다 무실점 연승 기록(7연승)을 넘어섰다.
배려로 쓰인 이동국의 힐링캠프
최 감독은 후반 추가시간 마지막 1장의 교체카드를 썼다.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것으로 알려졌던 이동국(35)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시즌간 헌신한 애제자를 위한 배려였다. 만면에 미소를 띤 이동국과 흐뭇한 표정의 최 감독이 오버랩 됐다. 관중들이 모두 기립해 '이동국'을 연호했다.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동행으로 쌓인 신뢰와 정을 보여주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비로소 '우승의 미소'가 전북 선수단을 휘감았다. 전북에서만 3개의 별을 딴 최 감독과 이동국, 프로생활 15시즌 만에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본 김남일 모두 기쁨음 숨기지 않고 경기장 중앙 단상에 올라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피날레는 이동국의 몫이었다. 모든 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라운드에서 금색 우승 트로피를 두 손으로 번쩍 치켜 올렸다. 꽃가루와 환호가 뒤섞인 무대는 챔피언만을 위한 자리였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