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후보작

스포츠조선

[인터뷰]'떠날때도 상남자' 하석주 전남 감독 '사퇴의 변'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4-11-12 12:41 | 최종수정 2014-11-12 13:17



하석주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사퇴한다.

전남 드래곤즈 구단은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하 감독의 사퇴 사실을 공식화했다. 구단은 3주전부터 연봉 인상과 함께 재계약을 제의했다. 목표 삼았던 6강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난 3시즌동안 전남을 변화시키고 업그레이드시킨 하 감독의 지도력과 열정을 인정했다. 그러나 사퇴에 대한 하 감독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경했다. 지난 3년간 하 감독을 보필해온 '전남 레전드' 출신 '캐넌슈터' 노상래 수석코치가 지휘봉을 이어받는다.

2012년 8월 전남에 정해성 전 감독 후임으로 부임한 하 감독은 '전남 돌풍'을 이끌었다. 지난 2년간 '전남유치원'이라 불릴 만큼 어린 선수들로 이뤄진 전남을 단단하고 질긴 팀으로 만들어냈다. 치열한 강등전쟁속에 살아남았고, 빅클럽에 비해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김병지, 현영민, 스테보 등 고참 에이스들과 이종호 안용우 김영욱 전현철 심동운 등 어린 선수들을 조화롭게 엮어내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도 물러섬 없이 당당했다. "그라운드에 모든 것을 쏟아라. 열심히 하려다 골 먹는 건 괜찮다. 뒤로 물러서다 지면 바로 뺄 것"이라며 파이팅을 독려했다. '상남자 축구'로 회자됐다.

스플릿 리그의 향방을 좌우하는 지난 9월, 하 감독은 이종호 안용우 김영욱 등 주전 3명을 한꺼번에 '이광종호'로 보냈다. 전남은 주전들의 부재속에 9월 승점 4점에 그쳤지만, 하 감독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이 쟁취한 28년만의 금메달과 제자들의 쾌거를 누구보다 기뻐했다. 태극마크 대선배로서 한국축구의 '대의'를 생각했다. 올시즌 스플릿이 갈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피튀기는 6강 전쟁을 펼쳤다. 승점 1점차로 울산에 뒤지며 스플릿 하위리그로 떨어졌지만 누구도 전남을 탓하지 않았다. 눈물을 쏟는 선수들에게 하 감독은 "여기까지 잘왔다. 절대 고개 숙이지 마라"고 격려했다. 전남은 현재 K-리그 클래식 하위 스플릿 1위, 전체 7위다.재미있고 공격적인 축구로 전남의 르네상스를 이끌며, K-리그 클래식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 감독은 사퇴의 이유에 대해 가장 먼저 "가족"을 이야기했다. "가족들을 위해 내가 필요한 때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후회할 것같다"고 했다. 2012년 8월 지휘봉을 잡은 이후 2년간 치열한 강등 전쟁을 버텨냈고, 올해는 6강 전쟁을 치렀다. 3년 가까이 축구만을 위해 살았다. 전남 광양에서 수도권에 있는 집에 가는 날은 손꼽았다. 개인적인 삶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고, 내조를 아끼지 않던 아내는 아팠다."아들이 셋이다. 최근 갑상선암을 앓은 아내가 혼자 세 아들을 돌보느라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고 했다. "둘째 아들이 올해 고3이고, 6학년인 막내아들이 이제 막 축구를 시작한다. 아들들 곁에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원도 양양에서 홀로 지내는 팔순 노모도 늘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가 다리를 못쓰신다. 혼자서 거동을 못하신다. 4년전 어머님을 모시던 큰형님 내외가 돌아가신 이후 1년에 겨우 한두번 뵙는다. 광양으로 모실까도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고향을 떠나길 원치 않으셨다. 이제 한달에 한번은 찾아뵙고 싶다."

하 감독은 프로 사령탑이 되기 전 '무패신화' '11년만의 우승 신화'를 썼던 모교 아주대로 돌아갈 예정이다. 더 높고 더 화려한 곳을 지향하는 세태와 달랐다. 반대방향을 바라봤다. 낮고 소박한 곳으로 돌아가는 편을 택했다. "다들 이해를 못하겠다고 한다. '바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학교에서도 연봉을 프로처럼 많이 드릴 수 없는데' 하더라. 그러나 현시점에선 내게는 이것이 최선이고 옳은 선택"이라며 웃었다.

하 감독은 시즌이 끝나기 전에 사퇴를 밝히게 된 데 대해 오히려 구단의 안정을 이야기했다. "노상래 수석코치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구단에도 강력하게 천거했다"며 말을 아꼈다. "현재의 전남을 흔들림없이 이끌기에 인성적으로나, 실력적으로 '전남 레전드'인 노 코치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신뢰를 표했다. 지난 3년간 자신을 그림자처럼 보필한 '최고의 파트너'인 후배 노 코치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사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올해 초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일이다. 오랫동안 고민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했다. "내게 올시즌은 그래서 더 절실했다. 전남을 멋지게 6강에 올려놓고, 멋지게 물러나고 싶었는데, 목표 삼았던 6강에 들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며 웃었다. "6강에서 탈락하고, 잔류를 조기확정지은 이후 선수들의 목표의식이 아무래도 약해졌다. 프로라면 마지막까지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남은 3경기에서 우리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으로 7위를 확정하고, 멋진 마무리를 해준다면 고맙겠다"고 말했다.사퇴의 변을 털어놓는 순간순간 끊임없이 '우리애들'과 '전남'을 챙겼다. "'우리애'들이 잘해주겠죠.'우리애'들 좋은 기사 많이 써주세요. 전남은 더 많은 응원이 필요한 팀입니다." '지금 이순간,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잠시 꿈을 접는다'는 '상남자' 하석주의 '사퇴의 변'엔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오직 가족과 전남, 선수 그리고 축구에 대한 순정을 이야기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