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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김호곤 감독, 1978년 南北 공동우승-시상식 도발 추억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4-10-02 06:19


사진출처=조선일보

36년 만이다.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사상 두 번째로 축구 결승전에서 남북이 만났다.

첫 충돌은 전세계적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1953년 7월 휴전 이후 25년이 흘렀지만, 아픔은 봉합되지 않았다. 냉랭함은 여전했다. 그라운드는 또 다른 전장이었다. 당시 총성없는 전쟁을 직접 겪은 산증인이 있다. 김호곤 전 울산 감독(63)이다.

1971년 당시 최연소 국가대표(청룡)로 발탁된 김 감독의 북한에 대한 첫 인상은 '놀라움'이었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김 감독은 "북한은 당시 체코와 헝가리 등 사회주의국가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그렇다보니 한국 축구보다 유럽 축구를 더 빨리 흡수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일명 '바나나킥'이라는 슈팅을 잘하더라. 기술로는 한국보다 앞서 있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4년이 흐른 뒤 김 감독은 아시안게임 피날레 무대에서 북한을 만났다.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고 했다. 김 감독은 "남북대결이라 부담이 컸다. 1차 격돌은 심리전이었다. 북한은 한국 취재진을 향해 사진을 찍으면 카메라를 부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국은 대응하지 않았다. 유언비어도 난무했다. '북한이 패하면 선수들이 아오지탄광으로 끌려간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그만큼 양팀의 긴장감이 고조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국 팀의 주장이었던 김 감독은 동료들에게 침착하게 하자고 했다. "우리가 절대 흥분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페어플레이를 하자고 했다. 상대가 거칠게 나올 것이라고 다들 예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양팀 선수들 모두 페어플레이를 했다. 건들면 곧바로 터질듯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0-0에서 돌입한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경기가 끝나자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안도의 한숨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규정에는 승부차기로 순위를 결정하는 규정이 없었다. 남북의 공동 금메달이었다. 한 차례 고비가 더 남아있었다. 시상식이었다.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김 감독은 "나는 북한의 주장이었던 김종민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양보했다. 그런데 내가 올라갈 차례에 보니 종민이가 시상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더라. 나는 남은 공간에 겨우 올라섰다"며 웃었다. 이 때 북한이 귀여운(?) 도발을 했다. 뒷쪽에 서 있던 북한의 골키퍼가 김 감독을 밀쳤다. 김 감독은 시상대에서 떨어졌다. 김 감독은 "북한 골키퍼는 공동우승이지만, 북한 주장만 혼자 서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했다. 화가 날 법도 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북한의 당시 사정을 아니깐 그냥 넘길 수 있었다. 안그래도 북한 선수들은 대회 진행요원들에게 혼이 났다."


시상이 끝난 뒤 하이라이트는 남북 주장의 사진촬영이었다. 취재진의 사진촬영 요청에 김 감독은 북한의 주장 김종민에게 이렇게 얘기했단다. "우리의 상황이 좀 그렇지만, 지금은 아시아를 떠나 전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그것을 생각하자." 그러면서 김 감독이 과감히 어깨동무를 시도했다. 순간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아직도 축구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 감독의 용기에 그라운드의 냉랭함은 눈녹듯 녹아내렸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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