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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K-리그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한국 A대표팀의 선수 구성은 기형적인 구조로 변해버렸다. 국내파보다 해외파가 주를 이룬다. 무조건 해외로 나가기만 하면 K-리거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있다. 선수들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유럽 물을 먹고 싶어한다. 설사 외국에서 실패를 하더라도 국내 유턴이 쉽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선수는 뛰어야 선수다. K-리거들은 꾸준하게 출전 기회를 부여받으면서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헌데, 손흥민(레버쿠젠) 기성용(스완지시티) 이청용(볼턴) 김영권(광저우 헝다) 등 몇몇 해외파를 제외하고 태극마크를 단 해외파들은 벤치만 달구고 있다. 한국 축구의 정통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박주영(29)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스널에서 두 시즌을 뛰면서 7경기 출전에 그쳤다. 1골이 전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선 1경기 출전에 불과했다. 그래도 박주영의 잠재력을 믿었다. 그러나 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지옥이었다. 실망만 안겼다. 박주영의 추락은 곧 한국 축구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K-리거가 돋보였다. 김신욱(울산)이 자존심을 세웠다. 박주영에 가려 기회를 잡지 못했던 김신욱은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맹활약했다. 골키퍼 김승규(울산)도 눈부신 선방을 펼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월드컵 이후 K-리거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한국 축구가 더 이상 해외파에 의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K-리거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한국 축구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에 모든 이들이 공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같은 논리를 잘 알고 있다. 그도 독일의 브라질월드컵 우승 원동력을 국내 선수 육성에서 찾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유스팀 재임 시절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 2회 출전했다. 첫 도전이었던 2001년 아르헨티나 대회에선 8강에 올랐다. 2003년 아랍에미리트(UAE) 대회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지금의 독일대표팀은 독일 클럽 유스팀을 기반으로 성장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당시만 해도 독일 축구계는 심각한 재목 부재를 겪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특급 소방수로 나섰다. 저메인 존스(2001년)를 비롯해 로베르트 후트, 피오트르 트로초프스키(이상 2003년) 등 유망주들을 발굴했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를 둔 존스의 발탁은 당시 순혈주의를 고집하던 독일 축구계에 파격적인 발탁으로 주목을 받았다. 존스는 이 대회 활약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2008년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폴란드 이민자 집안 출신이었던 트로초프스키 역시 뮌헨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함부르크와 세비야의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독일 대표로 성장했다. 첼시와 미들즈브러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후트도 2009년 스토크시티로 이적한 뒤 주축 선수로 거듭났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