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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혈투였다.
'황새' 허를 찌르다
휘슬이 울리기 전 진용이 결정된다. 서울의 안방이었다. 서울의 불문율은 전반 홈, 후반 원정사이드에서 진을 치는 것이다. 후반 서포터스석 바로 앞에서 공격을 전개하면 더 큰 홈이점을 누릴 수 있다는 함수가 깔려 있다. 하지만 황 감독이 허를 찔렀다. 서울의 '금기'를 흔들어버렸다. '동전던지기'에서 선택권을 잡은 포항은 진용을 먼저 결정했다. 서울의 불문율이 깨졌다. 전반 원정, 후반 홈에서 플레이를 전개했다. 그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작전이 들어갔다.
'독수리'의 키스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 남는자가 강한 것이다. 최 감독이 생존했다. 그는 연장에 이은 승부차기까지 철저하게 대비했다. 몰리나, 에스쿠데로, 에벨톤 등 외국인 선수들을 선발에서 제외시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후반 에스쿠데로와 몰리나, 연장 후반 에벨톤을 차례로 투입됐다. 에벨톤의 경우 승부차기에 대비한 카드였다. 골키퍼 유상훈은 전날까지 주전이 아니었다. 최 감독은 23일 전북전에서 맹활약한 '원조 주전' 김용대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이날 오전 생각을 바꿨다. 김용대의 부상 공백을 말끔히 메운 유상훈에게 더 기회를 줘야된다고 판단했다. 유상훈이 귀신같이 번쩍였다. 포항 키커들의 슛을 모두 막아냈다. "현역과 지도자 통틀어 1~3번 다 막아낸 골키퍼는 처음 본다." 최 감독의 환희였다.
승부차기 순서에도 비밀이 있었다. 에벨톤→오스마르→김진규→고명진→몰리나 순이었다. 2-0으로 앞선 순간 4번째 키커는 고명진이었다. 하지만 한 골만 넣으면 끝이었다. 페널티킥이 뛰어난 몰리나를 전진 배치시켰고, 적중했다. 승리가 확정된 순간 최 감독은 그라운드에 키스했다. 선배 황 감독과는 한때 절친이었다. 종종 소줏잔도 기울였지만 올해 끊겼다. 라이벌이라는 시선은 두 감독을 분리시켰다. 그러나 경기 후 전화 통화로 서로 격려하면 흉금을 털어냈다. "감독대행부터 시작해 지도자로서 거뒀던 가장 슬픈 승리다. 황선홍 감독과 치열한 경쟁을 예상했는데…." '황새'를 걱정한 '독수리'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경기는 끝이 났다. 서울이 이겼다.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서울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 자신감을 갖고서 상대가 누가 됐든 우리가 갈 길만 걸어가겠다."
광저우가 아닌 웨스턴시드니
서울의 4강전 상대는 광저우 헝다(중국)가 아니다. 광저우는 8강전에서 웨스턴시드니(호주)에 무너졌다. 이날 2대1로 승리했지만 1차전에서 0대1로 패해 원정 다득점에서 시드니에 밀렸다. 최 감독은 광저우와 맞닥뜨려 복수를 바랐다. 서울은 지난해 ACL 결승전에서 광저우와 충돌했다. 1차전 홈에서 2대2, 2차전 원정에서 1대1로 비겼다. 원정 다득점에서 밀렸다. 준우승의 한을 털어버리겠다고 했다. 상대로는 광저우가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웨스턴시드니가 그 자리를 꿰찼다.
아쉽지만 지금부터는 또 다른 도전이다. "FC서울의 진정한 모습은 8월부터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매 경기 나아지고 있다. 사실 도전자 입장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모든 게 힘들 것으로 봤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8강전을 마친 최 감독의 출사표다.
4강전은 9월 17일(서울·1차전)과 10월 1일(시드니·2차전) 열린다. 결승전은 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승자가 홈앤드어웨이로 격돌한다. 서울의 고지는 설명이 필요없다. ACL 정상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