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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훈(서울)의 이름 뒤에는 '조연'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김용대의 아성은 단단하고 높았다.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절치부심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김용대의 부상으로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절실했다. 매일 구리챔피언스파크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자신을 단련했다.
유상훈은 경기 후 "연장까지 가면서 동료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2골을 넣었는데 내가 2골을 실점해 아쉬움이 많았다"면서 "승부차기에서 슛을 막아 만족하고 있다"고 미소를 띠었다. 그는 2-1로 앞서고 있던 연장 후반 15분 강수일에게 동점골을 내준 부분을 두고는 "끝까지 집중하지 못해 아쉬웠다. 경기 종료 직전 실점하면 누구나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신화용과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눈빛도 마주치지 않았다. 상대방 키커들만 봤다. 우리 선수들을 믿고 내 할 일을 다하는데 집중했다. 잘 추스르고 승부차기에 나서 잘 된 것 같다. 동료들도 끝까지 집중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 "(선방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몇 명은 예상대로 찼는데, 김승대처럼 데이터가 없는 선수들도 있었다"며 "승부차기는 심리적인 면에서 골키퍼가 유리하다고 본다. 부담감은 크지 않았다"고 당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경기 후 최용수 서울 감독은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유상훈이 지난 이틀 간 승부차기 훈련을 성의없이 하길래 사실 걱정을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가기 전에 '괜찮다. 걱정마라. 네 역할의 배 이상을 했다'고 말했지만, 조마조마 했다." 유상훈 입장에선 머쓱할 만하다. "포항전 훈련 뒤 선수 전원이 승부차기 훈련을 했다. 이틀 동안 나는 하나도 막지 못했다(웃음). 코칭스태프들이 믿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웃음). 우리 선수들이 잘 차는 것 같다." 스승과 제자가 주거니 받거니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최 감독이 보는 유상훈은 순둥이다. "순해서 걱정이다. 좀 더 거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착하기만 하다(웃음)." 제자에 대한 믿음은 크다. 최 감독은 "유상훈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많은 선수다. 팔이 길다(웃음). 장신이지만 반사신경이 좋고 제공권, 위치 선정이 좋다. 팀이 어려울 때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김용대는 장기부상이다. 언제 복귀할 지 미지수다. 최고의 기량과 정신력을 보여주는 선수가 주전이다. 김용대가 역사를 써왔지만,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며 유상훈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에 대해 유상훈은 "내게는 이 기회가 절실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매 경기 임하고 있다"며 "(김)용대형이 복귀하더라도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면 감독님도 고민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유상훈이 꼽는 롤모델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독일을 정상으로 이끈 마누엘 노이어(뮌헨)다. 유상훈은 "브라질월드컵에서 골키퍼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잘하는 선수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마누엘 노이어(뮌헨)를 좋아한다. 필드에서 선수들과 볼처리를 하는 등 함께 호흡하는 장면이 좋다. 나도 그런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암=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