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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함이 채 아물기도 전에 벨기에를 만난다. 이번 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 '끝'이 아니라, 2015 아시안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및 본선을 준비하는 '시작'이란 관점에서 벨기에전을 봤으면 한다. 행여 하나라도 빠질까 16강행에 필요한 경우의 수를 조심스레 세어보지만, 일단은 준비한 것을 모두 쏟아 부어 지더라도 후회 없는 경기를 하는 것이 먼저다.
3골이 들어가는 데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영표, 차두리처럼 "괜찮아"를 연발하며 격려할 선배는 없었다. 여기엔 20대 후반-30대 초중반 대형 수비수가 부재한, '세대의 불균형'이란 구조적인 문제까지 얽혀 있다. 실점의 중압감은 20대 중반 수비진이 수용할 범위를 넘어섰고, 이어 곧장 코너킥까지 얻어맞는다. 헤더에 나선 상대의 사전 움직임이 까다로웠던 것도, 힘을 싣고자 러닝 점프를 시도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평범한 경합 상황에서 타점을 방해하지 못한 게 원인. 2002 한일 월드컵 이태리전 비에리를 끝까지 몰아내려던 최진철의 수비법과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 같은 실점이지만, 체감하는 좌절감은 급이 다르다.
중앙 수비는 뒷공간으로 들어오는 롱패스에 또다시 좌절했다. 미리 콜을 통해 동선이 얽히지 않게끔 볼 처리할 사람을 정하고, 그다음 수비 동작을 준비해야 할 장면이었다. 지탱해놓은 기둥이 걷잡을 수도 없이 연이어 무너지던 상황, 선발로 쓰지도 않을 곽태휘를 브라질까지 데려가며 수비진에 안정감을 기하려 했던 홍명보 감독의 고뇌도 함께 느껴졌다. 후반 들어 내준 네 번째 골에 폐허가 됐다. 비단 수비형 미드필더, 수비진만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수비 리딩을 주도해야 했던 골키퍼 정성룡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뒷선에서 지켜보며 많은 대화로 어린 수비진을 이끌지 못한 아쉬움이 상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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