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목공이 월드컵 최다골 타이까지, 클로제의 인간승리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4-06-23 05:59


미로슬라프 클로제. ⓒAFPBBNews = News1

후반 23분 그가 들어갔다. 다들 주목했다. 브라질의 영웅 호나우두가 가지고 있는 월드컵 최다골 기록(15골)에 한 골 모자란 주인공. 새로운 기록이 나오기를 바랐다. 바람은 금방 현실이 됐다. 2분 뒤였다. 토니 크루스가 코너킥을 올렸다. 베네딕트 회데스가 헤딩슛을 했다. 골문을 벗어나는 듯 했다. 그가 번쩍였다. 2선에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슬라이딩하며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했다. 골네트가 출렁였다. 골을 확인한 그는 전매특허 공중제비 세리머니를 펼쳤다.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도약이 부족한 탓에 착지에 실패했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렇지만 얼굴은 웃음꽃이 피었다. 22일 열린 독일과 가나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G조 2차전. 1-2로 뒤지고 있던 독일의 천금같은 동점골이자 월드컵 개인 최다골 타이기록을 쓴 그는 미로슬라프 클로제였다.

클로제는 1978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거처를 옮겼다. 프로축구 선수인 아버지 요세프 클로제는 1978년부터 프랑스 2부리그의 AJ옥세르에서 뛰었다. 1986년 은퇴한 요세프는 독일의 쿠젤에 정착했고 독일 국적도 취득했다.


공중제비도는 클로제. ⓒAFPBBNews = News1
아버지를 따라 독일 국적을 얻은 클로제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클로제가 아는 독일어는 '예(ja)'와 '감사합니다(danke)' 정도였다. 독일어를 못하는데다 보이지않는 편견을 받던 폴란드 출신의 클로제에게 돌파구는 축구밖에 없었다. 하지만 클로제는 어린 시절부터 빛을 보지는 못했다. 19세까지 독일 7부리그인 블라우바흐에서 뛰며 목공일을 병행했다. 이때까지만해도 그저 동네에서 볼 좀 차는 아마추어 축구 선수에 불과했다.

1998년 기회가 찾아왔다. 클로제의 가능성을 알아본 FC홈부르크(5부리그)가 러브콜을 보냈다. 한시즌을 뛴 뒤 1999년 카이저슬라우테른 2군(3부리그)을 거쳐 1999년 카이저슬라우테른 1군에 합류하며 꿈에 그리던 분데스리가 무대를 밟았다. 5시즌동안 142경기에서 57골을 넣었다. 클로제는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 3시즌(132경기-63골)을 뛰었다. 2007~2008시즌을 앞두고 독일 최강 바이에른 뮌헨으로 둥지를 옮겼다. 초반 2시즌동안 은 각각 21골과 20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2009~2010시즌 6골, 2010~2011시즌 5골에 그치며 방출됐다. 클로제는 은퇴의 기로에서 과감하게 도전을 선택했다. 이탈리아 라치오로 전격 이적했다. 2011~2012시즌 16골, 2012~2013시즌 16골을 넣으며 부활을 알렸다. 2013~2014시즌에도 8골을 넣으며 건재를 과시했다.

월드컵에서의 클로제는 정복자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5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헤딩으로만 해트트릭을 만들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도 5골을 넣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클로제는 건재했다. 4골을 넣으며 골폭풍을 이어나갔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요하임 뢰브 독일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클로제와 마리오 고메스(피오렌티나)를 놓고 저울질을 했다. 꾸준한 클로제를 택했다. 월드컵 최다골에 다가섰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뢰브 감독은 "클로제의 대기록을 위한 특별 배려는 없다. 팀이 우선이다"고 선을 그었다.

클로제는 결국 대기록을 썼다. 월드컵 최다골 타이기록을 작성한 클로제에게 호나우두는 트위터를 통해 '(월드컵 최다 골) 클럽 가입을 환영한다. 클로제가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이 된다'며 축하를 보냈다. 클로제는 경기가 끝난 뒤 "월드컵에서 15호골을 넣어 너무나 행복하다"고 웃음지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이길 수 있었는데 2대2로 비겨서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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