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이들은 자라서...' 월드컵키즈의 꿈★을 응원할 시간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4-06-18 06:02


 그래픽=김변호 기자 bhkim@sportschosun.com

"여기에 온 선수들은 앞으로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어갈 선수들이다."

17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와의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전날 기자회견, 홍명보 월드컵대표팀 감독은 23명의 태극전사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12년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TV로 지켜보던 소년들이 꿈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된다. 러시아전은 '대한민국 월드컵 키드'의 첫 도전이다. 평균연령 25.9세,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은 대한민국 축구의 총아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뜨거운 에너지를 자양분 삼아 자랐고, 2009년 20세 이하 월드컵 8강,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2011년 카타르아시안컵 3위,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까지 한국축구의 역사와 함께 폭풍 성장했다. '이기는 습관' '원팀(One Team)'의 느낌을 몸으로 안다. 큰무대를 즐길 줄 안다. 헝그리하지 않지만 당당하다. 누구는 K-리그 클래식의 중심으로 자리잡았고, 누구는 영국, 독일 등 빅리그 빅클럽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시련과 영광의 순간도 수없이 많았지만, 우쭐하지도, 주눅들지도 않고, 그저 거침없이 달렸다. 그들의 꿈은 월드컵이었다.

저마다 가슴에 품은 사연도 절절하다. '그저 내 아들이 배불리 먹을 수만 있게 해주세요.'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 속에 축구공을 잡은 '수문장' 정성룡, 한쪽 눈을 잃고도 축구의 운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멀리뛰기선수' 출신 곽태휘, 열두살에 엄마를 여읜 후 축구를 '엄마' 삼은 '폭풍왼발' 윤석영, 홍명보 감독을 '멘토' 삼은 '풋살 국가대표' 김영권, 뛰어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재능은 눈부셨다. 큰무대에선 어김없이 '인생골'을 터뜨려주던 '추자도소년' 지동원, 대구 시장통에서 발에 걸리는 건 다 차올리던 '축구천재' 박주영, 패스를 안주면 교문 밖까지 공을 '뻥뻥' 차내던 '욕심쟁이' 기성용, 열다섯살에 조광래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마트보이' 이청용, 24시간 오직 축구생각뿐이던 '원더보이' 손흥민, 세계가 그들을 주목했다.

투혼은 오롯했다. 그라운드에서 기절할 때까지 뛰었던 '캡틴본능' 구자철과 1m60도 채 안되는 키로 죽자살자 덤벼들던 '악바리' 김보경, 승부차기 타임을 은근히 즐겼던 '강심장' 이범영, 연습경기도 업혀나올 만큼 치열했던 '제주소년' 홍정호, 휘슬만 울리면 눈빛이 변했던 '순둥이' 김창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뛰었다..

시련은 힘이 됐다. 지긋지긋한 무릎 재활을 이겨내고 '대성'한 하대성, 인천2군 선수에서 아시아 최고 선수로 날아오른 '이글' 이근호, 올림픽행이 좌절된 후 눈물만큼 땀을 쏟은 '운동머신' 김승규와 한국영,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늘 당당했던 '독도남' 박종우, 남들보다 20㎝ 작았지만 기술은 20㎝ 앞섰던 '비밀병기' 이 용, 넘어질 때마다 더 강해졌다.

노력은 정직했다. 한발 늦게 시작한 축구가 너무 좋아, 두발 더 뛰었던 '멀티수비수' 황석호부터 J-리그, 스위스리그, 분데스리가까지 점령한 '뚝심의 사나이' 박주호, 스승의 질책도 웃음으로 받아들이던 '긍정의 거인' 김신욱까지, 이들 사전에 '포기'는 없었다.

12년 전 TV속에서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 승리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선보였던 '2002년의 캡틴' 홍명보가 '2014년의 아이들'을 이끈다. "좋지 않은 성적보다 후회를 남기는 것이 더욱 두렵다"고 했다. 후회없는, 100%의 홍명보호를 목표 삼았다. 한국축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되는 역사적 순간, 믿을 건 서로의 눈빛뿐이다. "나는 이 팀의 감독이고, 내가 믿는 것은 지금 이 팀의 선수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어왔다. 앞으로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해 미국 마이애미에서 분홍빛이 됐던 홍명보호는 브라질에서 100%의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홍 감독은 "이제 우리 선수들은 붉은색이 돼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100%의 붉은 함성은 준비됐다. 12년을 하루같이 기다려온 바로 그 순간이다. 그날의 초심을 응원할 시간, '즐겨라, 대~한민국!'
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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