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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이었던 빌 샹클리가 남긴 명언이다. 특급 스타들에게는 품격이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 나이와 상관이 없다. 안드레아 피를로(35·이탈리아) 아르연 로번(30·네덜란드) 디디에 드로그바(36·코트디부아르)가 브라질월드컵 초반 '베테랑의 품격'을 과시했다.
뒤에도 눈이 달린 '마법사' 피를로
피를로는 올해 35세다. 덥고 습도가 높은 마나우스에서 뛰기 쉽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보단 높은 축구 지능이 있다. 젊은 피로 맞선 잉글랜드를 잡아낸 것은 피를로의 현란한 플레이메이킹이었다.
이탈리아는 15일(이하 한국시각) 마나우스 아레나 아마조니아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2대1 승리를 거뒀다. 이탈리아의 모든 패스는 피를로를 거쳐갔다. 잉글랜드가 과감한 압박을 펼쳤지만 피를로는 유유히 그 압박을 빠져나갔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며, 플레이메이킹의 진수를 보여줬다.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마법을 선보였다. 전반 35분 첫 골은 말그대로 마법같은 장면이었다. 피를로는 자신에게 오는 패스를 뒤로 흘려줬다. 모두가 속은 완벽한 페인트였다. 잉글랜드의 수비수들이 시선이 현혹된 사이 뒤에 있던 마르키시오가 벼락같은 오른발 슛으로 잉글랜드 골망을 갈랐다. 피를로는 잉글랜드의 공세가 거세질때마다 환상적인 패스로 경기의 흐름을 바꿨다. 몸은 느려졌지만, 머리는 더욱 빨라진 피를로는 베테랑이었다.
4년 전의 아픔 치유한 '스피드스타' 로번
4년 전이었다. 로번은 네덜란드의 특급 조커였다. 후반 투입돼 번개같은 스피드로 네덜란드의 공격을 이끌었다. 네덜란드는 로번의 활약을 앞세워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이후 32년만에 결승에 진출했다. 사상 첫 우승의 꿈을 눈 앞에 뒀다. 상대는 스페인. 하지만 '결승 진출의 주역' 로번이 발목을 잡았다. 로번은 이케르 카시야스와의 1대1 찬스를 놓치는 등 최악의 플레이를 펼쳤다. 결국 네덜란드는 스페인에 무릎을 꿇었다.
4년 뒤 열린 브라질월드컵. 공교롭게도 14일 사우바도르 아레나 폰테 노바에서 열린 네덜란드의 첫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로번이 복수에 성공했다. 후반 8분 환상적인 개인기로 역전골을 터뜨린 후, 35분에는 엄청난 스피드로 쐐기골까지 작렬시켰다. 이를 악물고 달리는 그의 모습에서 의지가 느껴졌다. 로번은 항상 최고의 윙어로 불렸다. 하지만 부상과 기복이 약점이었다. 어느덧 30줄에 접어든 로번은 이제 그 약점마저 이겨냈다. 거기에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까지 더했다. 로번은 경기 후 "내일부터 또 다시 시작이다"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분위기를 바꾼 '드록신' 드로그바
이것이 스타의 힘이다. 드로그바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후반 16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경기장 분위기가 단숨에 바뀌었다. 그의 투입만으로 코트디부아르 선수들의 눈빛이 살아났다. 무실점으로 막고 있던 일본 수비진은 큰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볼터치가 많지 않았지만 위협적인 움직임과 존재감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코트디부아르는 15일 열린 일본전에서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전반은 0-1로 뒤진채 마쳤다. 일본의 조직력에 밀렸다. 개인기에서 월등했지만 무의미한 드리블 돌파가 많았다. 마무리까지 이어지기에는 짜임새가 부족했다. 결국 코트디부아르는 드로그바 카드를 꺼냈다. 드로그바는 노련미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불필요한 드리블 대신 원터치 패스를 사용해 경기의 템포를 끌어올렸다. 문전에서 위협감도 상당했다. 후반 19분과 21분 터진 보니와 제르비뉴의 헤딩골은 일본 수비진들이 드로그바의 움직임을 신경쓰다 놓친 측면이 컸다. 36분에는 절묘한 프리킥, 39분에는 멋진 왼발슛이 살짝 빗나갔다. 예전처럼 90분 내내 뛸 수는 없지만, 한순간 경기를 바꿀 힘은 여전히 갖고 있다. 그게 드로그바의 힘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