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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부일체]④조광래 감독 "中3 이청용 35분 만에 마음 훔쳐"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4-05-15 07:38


◇2009년 8월 볼턴으로 진출한 이청용이 출국 전 경남을 이끌던 조광래 감독에 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제공=경남FC

"와, 저놈 봐라!"

흥분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마음속의 동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전반 35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광래 전 A대표팀과 중학교 3학년 이청용(26·볼턴)의 첫 만남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때는 그랬다. 불과 10년 전의 일이었다.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이 없었다. 당시 FC서울의 사령탑이었던 조 감독은 중학생들에게 눈을 돌렸다. 갈증이 있었다. 고교 졸업생들을 영입해 훈련시켰지만 이미 몸에 밴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중학생 영입은 당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모두가 의아해 하더라. 하지만 유소년 육성 방향으로 2군을 운용해야 팀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 감독의 레이더에 서울 도봉중 3학년생인 이청용이 포착됐다. 2003년이었다.


될성부른 나무, 처음부터 달랐다

조 감독은 코치진을 모두 불렀다. 중학교 두 팀이 격돌한 연습경기였다. 그 날의 '환희'는 여전히 기억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전반 35분 만에 아버지 오라고 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매력인 스승의 입가는 미소로 가득했다.

가능성을 느꼈단다. 조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서 대처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드리블을 하는데 사전에 계산을 하고 있더라. 문전에서 왼쪽으로 2명을 유인하며 볼을 치다 공간이 열리자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 그 나이에도 공간 활용 능력은 성인 선수 못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청용이 조 감독의 마음을 훔쳤다. 그러나 프로 입단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조 감독은 이청용의 아버지에게 "경기를 이해하면서 플레이하는 것은 어릴 때 심어줘야 한다"고 설득했다. 아버지는 고민했지만 아들은 "자신있다"고 했다. 이청용은 학업을 포기하고 프로선수가 됐다. 조 감독은 "대학을 졸업하고 입단한 이영표의 계약금이 1억2000만원이었다. 이청용에게는 계약금으로 1억3000만원을 줬다. 미래에 대한 투자였다"며 웃었다. 만약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면 오늘의 이청용이 있었을까?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나이가 어려도 프로는 프로다. 갓 입단한 이청용은 동계훈련기간에 키프로스 해외 전지훈련을 함께했다. 조 감독은 A~C그룹으로 나누었다. C그룹에는 이청용을 포함한 앳된 중학생 그룹이 포진했다. 동유럽 2군과의 평가전에 투입했는데 이청용도 잔뜩 겁을 먹었다. 뛰어난 체격조건에 압도당해 '축구'를 하지 못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조 감독은 처음 화를 냈다고 한다. "상대가 어떻든 용기가 없으면 안된다. 이런 식이면 다들 한국으로 돌아가라." 호통을 쳤다.

조 감독의 훈련 프로그램은 특별했다. 체력 훈련을 금지시켰다.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이었다. 좁은 지역에서 모든 플레이를 하도록 지시했다. 특히 패싱과 포지션별 대응 능력, 볼컨트롤을 강조했다. 롱킥은 절대금지였다. 이를 어기면 페널티가 주어졌다.

조 감독은 "이같은 훈련을 1~2년간 계속해서 시켰는데 엄청 달라지더라. 2군 경기에 투입했는데 체력은 떨어졌지만 정말로 경기를 재밌게 했다. 청용이는 그때부터 영악하게 경기를 했다. 무리수를 안 두면서도 영리하게 상대를 이용하며 플레이를 했다"며 엄지를 세웠다. 서울을 거쳐 볼턴(잉글랜드)에 둥지를 트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됐다.


브라질월드컵 "단디해라"

이청용은 연습벌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자신을 혹사시켰다. 철저한 자기관리는 성장동력이었다. 사춘기도 없었다. 세상의 유혹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린 이청용은 선배들이 인정할 정도로 진정한 프로선수로 성장했다. 조 감독은 "자신이 프로라는 것을 스스로 느꼈던 것 같다. 규율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생활은 철두철미했다. 약하게 보였지만 강단이 있었다. 프로개념이 아주 강했던 아이였다. 결국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4년 전 남아공월드컵을 누빈 이청용은 홍명보호의 핵이다. 브라질월드컵이 목전이다. 이청용은 조 감독이 A대표팀을 이끌 당시 '만화 축구'라는 말을 만들었다. 만화에서 나올 축구를 주문한다는 '투정'이었다. 조 감독은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을 청용이가 했다. 브라질에서 만화 축구같이 해야한다"며 활짝 웃었다.

애제자를 향한 바람은 컸다. 그는 "청용이는 다른 선수보다 경기 생각에 대한 템포가 빠르다. 그래서 찬스를 더 많이 잡는다"며 "상대 진영에서 공격을 할때 득점에 대한 생각을 더 강하게 가져야 한다. 볼을 차는 것보다 보는 것이 먼저다. 골키퍼의 위치를 확인한 후 늘 슈팅을 하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슈팅도 과감해야 한다. 그러면 분명 득점을 더 많이 할 것"이라고 했다.

조 감독의 대명사는 '단디해라'다. 그 말도 잊지 않았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분명 좋은 결과를 믿는다. 청용아 단디해라." '단디해라'는 잘하라는 뜻이지만 그 속에는 '무한 자율', '무한 책임'이 상생한다.

10년이 흘렀지만 스승의 사랑은 100℃를 훌쩍 넘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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