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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원(23)이 자신이 원하던 독일 분데스리가에 안착했다.
새로 부임한 마틴 오닐 감독은 상당히 완고했다. 자신이 점찍은 베스트 11을 시즌 내내 고집했다. '한국에서 온 유망주' 지동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2012년 1월2일 맨시티전, 후반 투입된 지동원은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극적인 버저비터골로 최강 맨시티를 격침시키며 존재감을 알렸다. 프리미어리그 3년중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 전세계 축구계를 열광시킨,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오닐은 지동원을 여전히 외면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잉글랜드에서 '분노의 선제골'로 대한민국의 동메달을 이끈 지동원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부활을 꿈꿨다. 그러나 여전히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2013년 새해가 밝자마자 지동원은 스스로 길을 열었다.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 유니폼을 입었다. 그라운드에 굶주린 지동원에게 아우크스부르크는 약속의 땅이었다. 6개월 임대선수로 뛰며 17경기에서 5골을 넣었다. 바인지를 감독이 믿음의 눈빛을 보냈다. '지구특공대'로 회자된 선배 구자철과의 호흡은 환상적이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강등을 막아냈다.
시즌 직후 완전이적을 희망했지만 이번엔 신임 파올로 디카니오 선덜랜드 감독이 지동원을 원했다. 선덜랜드는 아우크스부르크가 감당할 수 없는 이적료를 제시했다. 도르트문트의 500만 파운드 이적제안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나 "지동원에게 기회를 주겠다"던 디카니오 감독은 크리스탈 팰리스전 이후 변했다. 헤딩골을 놓친 것이 화근이었다. 언론을 통해 찬스를 놓친 지동원을 공개비난했다. 이후 디카니오 감독은 선수단과의 불화로 인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10월, 거스 포옛 감독의 부임 후 또다시 운명이 꼬여들며,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새해 들어 2번의 선발 기회를 받았지만, 경기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골은 무리였다. 우여곡절끝에 선덜랜드는 지동원의 이적에 동의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했다. 당연히 경기력이 떨어졌다. 선수는 뛰어야 한다. 골잡이는 골로 말하지만, 가뭄에 콩나듯 찾아오는 기회를 늘 골로 연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동원은 2년반동안 선덜랜드에서 단 6경기(리그 4경기)를 선발로 뛰었다. 3시즌간 리그 24경기에 나서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총출전시간은 638분에 불과하다. 지난시즌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17경기 모두를 선발로 뛰었다. 6개월간 선덜랜드의 2배가 넘는 1495분을 집중력있게 뛰었다. 5골을 몰아쳤다.
영국 북동부 지역 일간지 선덜랜드 에코는 지동원의 이적이 확정된 직후 '2012년 새해 첫날 맨시티전 승리를 이끌었던, 젊고 유망한 한국 국가대표 선수의 불운한 시절이 막을 내렸다'고 썼다. 블레처리포트는 지난시즌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맹활약한 지동원이 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호펜하임전에서 보여준 깔끔한 오른발 골과 프랑크푸르트, 그루이터 퓌르트 전에서 보여준 왼발 피니시 장면 동영상을 함께 제시했다. 오른발 왼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재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팬들은 발견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고전했던 디에구 포를란 등의 사례를 인용했다. '우루과이 공격수 디에구 포를란은 맨유(2002~2004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스페인 비야레알(2004~200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2007년) 등에서는 펄펄 날았다. 2개의 유러피언 득점왕상에 이어, 라리가 득점왕에게 수여하는 피치치 트로피를 2번이나 들어올렸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했다. 스페인 미드필더 보르하 발레로는 웨스트브롬위치에서 고전했지만 라리가 레알 마요르카로 복귀한 2009~2010시즌 최고의 스페인선수로 선정됐고, 비야레알 미드필더로서 맹활약했으며 2012년 이후 피오렌티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재능 있는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와 잘 맞는 것은 아니다. 지동원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라고 썼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