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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의 기적, 월드컵 4강 신화에 이은 제 인생 3번째 기적 아닐까요."
산전수전 다 겪은 황선홍 포항 감독(45)의 소감이다. 프로축구 사상 첫 리그와 FA컵 동시제패라는 새 역사는 그만큼 찬란했다. 현역시절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던 추억을 고난의 시기 속에 내려놓고 최고의 지도자로 우뚝 섰다. 2일 포항에서 만난 황 감독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포항의 2013년 시작은 차디찼다. 외국인 선수 수급 불발, 자유계약(FA) 선수 재계약 지연 등 악재가 겹쳤다. 시간이 흘러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황 감독은 지난 2월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 동안 매일 훈련장과 호텔 사이 왕복 2시간을 걸으면서 고뇌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막이 오르자 포항이 초반의 우려를 딛고 순항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고공비행을 계속했다. 황 감독은 "극도로 부진했던 지난해 초반처럼 팬들에게 많은 욕을 먹을 각오를 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나름의 다짐도 했다. 그런데 출발이 좋았고 흐름이 쭉 이어졌다"고 말했다.
고비도 있었다. 9월 스플릿 그룹A 일정에서 4경기 연속 무승부의 부진에 그치며 우승에서 멀어졌다. 모두가 추락을 예상했다. 황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나중엔 무승부도 큰 이득이 될 것으로 봤다. 지지 않고 흐름을 이어가는 것도 굉장히 큰 것 아닌가. 선수들에게 계속 동기부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 무승부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웃었다.
기적의 드라마를 쓴 울산전 비화도 털어놓았다. 당초 황 감독은 울산-부산전(1대2 울산 패)의 결과만 봤다고 말했다. "울산과 부산이 비기면 다득점으로 (울산을)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경기를 안보려고 했는데 안 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부산이 역전을 이뤄낸 뒤 선수들은 소리를 지르고 뛰어 다니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더블의 초석은 '진흙탕 시련'
황 감독은 2007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2003년 은퇴 뒤 코치로 입문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가시밭길이었다. 데뷔시즌인 2008년 정규리그 26경기에서 단 5승에 그치며 14팀 중 12위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2009년 12위를 거쳐 2010년 8위까지 올라섰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혹자는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꺼내며 황 감독의 부산 시절을 실패로 규정했다. 황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 "성공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남들의 말처럼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린 나에겐 소중한 기회였다. 당시 부산엔 다른 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온 선수들이 많았다. 그들과 축구를 하는 의미를 찾으며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세상만사 마음같지 않은 법이다. 황 감독도 의욕이 앞섰던 시절이었다. "강 철, 윤희준 코치(이상 현 포항)를 부산으로 처음 데려오던 시절에도 내가 선수단 일정을 짜고 훈련을 시켰다. 코치같은 감독이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내가 그래선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갖은 수를 짜내도 결과는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이기고 싶은데 마음만큼 안따라주니 매일 인상만 썼다. 6연패를 하다 1승1무를 하고 다시 4연패를 할 때는 바닷물에라도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픈만큼 성숙했다. 포항의 더블 신화는 황 감독이 부산 시절 아프게 쌓아올린 경험의 산물이다. 황 감독은 "당시엔 힘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선수들과 함께 부대끼고 뒹굴었던 게 내 지도자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고 웃었다.
바르셀로나와의 대결을 꿈꾼다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들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들이 많다. 아시아를 호령했던 선배들과 비교하면 좀처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니 실망할 법도 하다. 황 감독의 꿈은 '제2의 황선홍'을 가능한 많이 키우는 일이다. "스트라이커 좀 키우고 싶다." 현역시절의 공격본능은 지도자 시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황 감독은 "강 코치는 주장, 윤 코치는 수비수 출신이다보니 팀의 균형과 안정감을 중요시한다. 나는 공격수 출신이다보니 매일 '공격 앞으로'다"라며 "코치들이 '감독님, 칼 좀 그만 뽑으시죠'면서 말릴 때마다 매일 싸운다. 후보 명단에도 공격수를 4~5명씩 넣는 이유도 상황마다 써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올 시즌 팀의 더블에도 불구하고 황 감독이 가장 아쉬워 하는 부분도 자신이 목표로 내건 '15골을 넣는 공격수'를 찾지 못한 것이다. 올 시즌 포항의 최다 득점자는 측면 공격수 조찬호(9골)다. 지난 5년 간 K-리그에서 두 자릿수 득점자 없는 팀이 정상에 오른 것은 포항이 유일하다. "공격수들이 잘 해주기는 했는데 두 자릿 수 득점은 넘어서지 못했다. 선수들이 물이 오를 때 쯤에는 제로톱, 로테이션이 먹혀들었다(웃음)." 그는 "제2의 황선홍을 키우는 게 지도자 인생 중 하나의 목표가 될 것 같다. 욕심이 있다. 골 잘 넣는 공격수가 많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웃음을 지었다.
모두가 우러러 보는 2013년의 황선홍호다. 정작 황 감독의 평가는 박하다. "결과론적으로 성공이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최용수 서울 감독 말처럼 이제 내려갈 일만 남지 않았나 싶다(웃음)." 올 초 황 감독은 자신이 만든 팀의 점수를 80점이라고 평가했다. 지금은 과연 어떻느냐는 물음에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답하면서 "내가 원하는 축구는 영원히 못할 수도 있다. 40명이 어떻게 내 말을 똑같이 따라하겠는가. 하지만 이상을 갖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100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도 밝혔다.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서 바르셀로나, 뮌헨 같은 톱클래스 팀과 겨뤄보는 게 지도자 입문 때부터의 꿈이다."
'황선홍에게 축구란'이란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우문현답었다. "축구는 내 인생 그 자체다.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예전이나 지금 모두 그렇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축구의 흐름과 인생은 함께 흘러가지 않을까."
포항=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