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 에이스'서 '포항 10번' 된 김은중

박아람 기자

기사입력 2013-07-31 09:23 | 최종수정 2013-07-31 09:34


ⓒ 강원FC

지난해 11월 28일, 강원이 1부리그 잔류를 확정 지은 날. 성남 탄천 종합운동장 터널을 빠져나와 구단 버스로 향하던 김은중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러자 고개를 갸웃하며 멋쩍게 미소 짓던 그가 남긴 말, "이게 뭐 축하받을 일인가요. 우리는 어차피 살아남을 줄 알았어요. 선수들 다 그렇게 믿고 있었고요.". 매 라운드 강등의 불구덩이 앞에서 엎치락뒤치락한 팀의 주장으로서 스트레스가 심했을 법도 했으나, 늘 "자신 있어요. 우리는 무조건 살아남을 겁니다."라며 동료들을 독려했던 김은중은 경기력 면에서, 정신력 면에서 강원에 엄청난 힘을 주었다. 그랬던 강원의 에이스가 이번 여름 포항의 10번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강원이 꾼 끔찍한 악몽, 2011년.

김은중과 강원을 논하려면 2년 전인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강원이 보낸 시간은 '끔찍함' 그 자체. 2009년 13득점으로 신인왕에 오른 데 이어 2010년에는 14골을 작렬하며 '2년 차 징크스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던 김영후의 득점력이 그다음 해에는 6골로 곤두박질쳤다. 2010년 여름 이적해 와 후반기 동안 5골을 몰아친 서동현의 골 감각도 2011년 통틀어 4골에 그치고 말았다. 이들의 부진은 특히 2011년 초반에 두드러졌고, 리그 시작과 함께 무득점 4연패를 당하던 날 최순호 감독은 강원을 떠났다. 찬스를 번번이 날린 이들은 심적으로 점점 더 위축됐고, 골대 불운까지 겹치자 골대에 고사까지 지내는 일까지 있었다.

수석코치로 강원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김상호 감독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번만 터져주면 좋을 텐데..."라며 팀의 주포들이 남긴 침묵에 속병을 앓았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조합이란 조합은 모두 시도해봤다. 4-2-3-1의 틀에 맞춰 김영후, 서동현을 위아래로 번갈아 배치해보기도 했고, 여기에 윤준하, 정성민, 김진용을 투입해 조합을 바꿔보기도 했다. 이마저도 잘 통하지 않았을 때엔 측면 자원 정경호를 중앙으로 들여와 투톱을 구성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에도 야속하리만치 강원을 살려낼 구세주는 없었다. 터지는 선수가 있어야 덩달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텐데, 그런 면에서 강원은 최악이었다. 2011년 30경기 동안 거둔 성적은 3승, 14득점.

전반기 4승, 김은중이 바꿔놓은 강원.

그러던 중, 3년 내내 강원의 득점 1위를 기록한 김영후가 2011년 10월 30일 부산 원정 경기를 마지막으로 경찰청에 가게 된다. 서동현으로 이듬해의 반등을 준비하던 김상호 감독은 U-17 대표팀을 이끌던 당시 한솥밥을 먹었던 제주 박경훈 감독과의 빅딜을 성사시킨다. 서동현과 김은중이 유니폼을 서로 갈아입은 것. 당시만 해도 '제주가 손해 보는 트레이드가 아니냐'는 말이 많았으나, 이듬해 서동현은 두 자릿수 득점(12골)에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얼마 전 동아시안컵에서 대표팀 유니폼도 다시 입어봤으니 선수 개인과 제주 팀 모두 이 트레이드의 효과는 누렸다는 생각이다.

그럼 김은중은 어떠했느냐. 말 그대로 '구세주'였다. 2011년 강원이 리그 첫 승을 신고한 경기는 6월 중순 부산과의 11라운드. 당시 스코어는 1-0이었는데, 이마저도 부산 수비수 이정호의 자책골의 힘을 빌렸던 건 참 웃기면서도 슬픈 '웃픈' 일이었다. 그렇게 안 터졌던 강원이 2012년엔 2라운드 만에 첫 승을 신고했다. PK와 다이빙 헤딩으로 두 골을 뽑아낸 김은중 덕분에 말이다. 그 이후 인천을 불러들인 자리에서도 두 골을 챙겨 2승을 기록했고, 울산 원정에서는 클래스 충만한 '독수리 슈팅'으로 강원 팬들을 감격시켰다. 김은중의 활약에 전반기 동안 대구, 인천, 경남, 울산을 잡아 4승을 챙긴 강원이었으나, 아쉽게도 6월 들어 꼬여버린 팀 성적에 김상호 감독의 경질까지 막지는 못했다.


김학범 감독과의 만남, 입지의 변화.


그리고 지난해 7월, 강원엔 김학범 감독이 긴급 투입됐다. 최하위까지 떨어졌어도 믿을 건 김은중이었다. 꾸준히 경기에 나선 그는 7월 한 달 동안 울산, 전북, 포항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했다. 그런데 포항으로부터 임대해 온 지쿠가 합류하면서 그 양상이 조금씩 변해간다. 지쿠가 처진 위치에서 패스로써 밥상을 차려주면, 웨슬리가 상대 뒷공간을 파괴하며 숟가락을 얹는 루트가 강원의 '승리 공식'이 되는 동안 김은중의 자리가 다소 애매해진 것. 중앙에 머물던 이 선수를 측면으로 돌리기도 했지만, 아쉬움은 여전했다. 또, 정규리그와 스플릿 일정을 합쳐 44경기에 달한 '곡소리' 나는 일정에 체력적인 부담을 느꼈던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7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는 데 그쳤지만, 팀의 주장으로서 잔류에 보탠 공로까지 희미해진 건 아니었다.

올해 들어서도 김은중에겐 계속 기회가 돌아갔다. 다만 에이스의 무게 중심에 이동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선수 본인의 폼이 떨어진 것과 맞물려 지쿠가 '신(神)'이라 불리며 팀의 중심으로 올라선 것. 포항에서와는 달리 경기 수를 보장받았던 지쿠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 상황에 김은중을 최전방에 내세우고 지쿠를 아래에 두자니 그 조합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고, 그러면서 김학범 감독은 김은중 대신 지쿠를 최전방에 배치해 제로톱 개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비록 경기에 나서는 시간은 줄었어도 김은중은 최전방 공격수로서 태클까지 마다치 않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팀 전체에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다만 강정훈의 임대 영입과 그리고 콜롬비아 공격수 영입설까지 떠오르며 입지에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포항, 김은중 효과 재현될까.

가는 곳마다 좋은 기운을 가득 담아준 건 틀림없는 일. 2010년 제주에서는 준우승을 일궈내며 MVP에 올랐고, 2012년에는 강원의 강등을 막아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엔 6개월 임대로 포항 황선홍 감독과 손잡게 됐다. 박성호가 지난해 한창때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 자리를 메우려던 배천석도 갈증을 완벽히 풀어내진 못했다. 미드필더진은 단연 K리그클래식 최상급인데, 앞에서 결정지어줄 공격수가 없었던 것이 황선홍 감독을 잠 못 들게 했을 고민이었을 터. 실제 포항의 득점 기록(리그 기준)을 봐도 조찬호가 6골로 팀 내 최다 득점, 그리고 고무열과 이명주가 5골로 그다음이다. 왼쪽에 포진돼 주력을 이용한 돌파를 시도하거나 중앙으로 잘라 들어오던 고무열의 플레이 특성을 봤을 때, 사실상 '정통 공격수'의 덕은 거의 보지 못한 것이 포항의 현실이었다.

이랬던 팀에 변화가 생겼다. 황지수(김태수)의 지원을 받은 이명주와 신진호가 허리를 휘젓고 있고, 여기에 황진성까지 돌아온다. 그리고 고무열, 조찬호, 노병준이 측면으로 침투해 상대 수비를 흔들어 놓는다. 이들의 지원을 받아 해결할 자리에 김은중이 들어온다. 79년생 김은중이 당장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 순 없다. 단, 그동안 '특급 도우미'가 없는 팀에서 고군분투한 시기가 많았다는 점, 그리고 '영혼의 투톱'으로 불린 절친 이동국이 전북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점을 봤을 때, 탄탄한 미드필더진의 도움을 받을 김은중의 '회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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