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에서 열린 연고전, '김도혁vs안진범' 승자는?

박아람 기자

기사입력 2013-07-30 09:48 | 최종수정 2013-07-30 09:52


시작부터 가열됐다. 급기야 고려대 수비수의 팔에 맞은 연세대 공격수가 쌍코피를 흘렸다. 옆줄 끝으로 흘러간 볼을 경합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양보는 없었고, 두 선수 모두 잔디 밖 육상 트랙에서 굴렀다. 한여름 대낮에 열리는 데다 격일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추계대학축구연맹전 특성상 6~70분대에 접어들면 체력 저하와 집중력 부족이 눈에 띄곤 했는데, 연대-고대가 만난 연고전만큼은 달랐다.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까지도 한 선수가 볼을 잡으면 금세 상대편 선수 2~3명씩 달라붙는 집념과 승리욕이 나온 것. 연대의 2-0 승리를 현장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정말 축구다운 축구를 봤다."며 두 팀에 극찬을 보냈다.

이번 맞대결 중 가장 눈길이 쏠렸던 진영은 '연대 김도혁 vs 고대 안진범'이 맞붙는 중원이었다. 11명이 싸우는 축구를 '개인vs개인'의 대결 구도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두 팀의 에이스가 벌이는 허리 싸움이 연고전의 키 포인트였고, 결국 승부 또한 그 지점에서 갈리고 말았다. 참. 운동장에 흘러넘치는 연고대의 뜨거운 에너지를 보았고, 또 각 대학 동문들이 독수리와 호랑이의 눈빛으로 이 글을 보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 '연고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예선을 통과한 두 팀의 조별 순위는 추첨을 통해 정해졌고, 대진이 나온 결과 연대가 32강전 홈 팀 자격을 부여받았음에 따른 점 미리 알린다.


두 팀이 벌인 전반 45분의 공방전 동안 큰 소득은 없었다. 허리에서의 싸움이 너무 치열했고, 두 팀 모두 수비는 준수했던 반면 공격 작업은 원활하지 않았던 탓이다. 연대는 송수영을 최전방에 놓고, 김현수-최치원을 양옆으로 넓게 배치하는 쓰리톱을 가동했는데,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그다지 시원치 않았다. 두 윙포워드를 옆줄 가까이에 두면서 양 윙백 유성기, 조평원과의 측면 연계로 크로스를 시도하거나 중앙으로 잘라 들어가는 움직임을 노려볼 만했다. 또, 흔히 3-4-2-1의 시스템으로 표기하는 것처럼 윙포워드가 좁혀 들어와 사실상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하면서 선수들 간 거리를 좁히고, 조금 더 세밀하고 아기자기한 패싱 연계를 이끌어 낼 수도 있었다.

다만 엄청난 그림을 기대하기엔 연대 공격수들이 보인 움직임이 대체로 정적이었던 데다, 고대가 내세운 김원균 카드가 꽤 주효했다는 생각이다. 플랫 3의 구성원으로 배치하던 이 선수를 앞으로 끌어 올려 포어리베로처럼 활용한 고대는 중앙 수비 앞 공간을 감싸는 데 공을 들였다. 여기에 고병근이 수비형 미드필더 선까지 내려오며 힘을 보탰고, 주로 최전방 허용준 아래에서 공격 전환 과정의 열쇠가 되고자 했던 안진범도 아래로 내려와 상당히 열심히 싸워주었다. 이들은 연대 쓰리톱의 연계, 그리고 후방 플레이메이커 김도혁의 발을 사전 봉쇄하려 했고, 그 노림수는 적절히 먹혀들었다. 그 결과 고대 진영으로 진입하려던 연대는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전진패스보다 횡, 백패스 비중이 높았다.?

하지만 고대가 보인 공격 전개도 그다지 매끄럽지는 못했다. 그 근원엔 연대가 자랑하는 막강한 플랫 3가 있었다. U리그 중부 2권역에서 12경기 9골, 경기당 1골도 내주지 않은 정승현-최준기-김성중은 탄탄한 피지컬에 발도 빠르고,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수비 범위도 상당히 넓은 자원들이다. 이들은 패스 루트를 형성해내던 안진범을 견제하고자 김도혁-최영훈의 중원까지 전진해 허리 싸움의 숫자를 늘렸다. 이렇게 중원에서 '박이 터져라' 싸웠으니, 골대까지 접근해 슈팅의 방아쇠를 당기는 건 사실상 어려웠고, 휴가철 고속도로처럼 꽉 막힌 중원을 넘기 위해선 롱볼로 윙백의 뒷공간을 겨냥해봄 직했다. 실제 고대는 전반 중반부터 길게 때려 넣고 라인을 끌어올려 싸우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 측면 싸움에서도 연대 수비진의 역할은 좋은 편이었다.


치고받은 전반전 양상에서 살짝 우위를 보인 건 고대였다. 상황이 이러하자, "고대가 투톱 체제로 나설 것을 감안해 플랫 3를 내세웠는데, 막상 보니 원톱이더라."던 연대 신재흠 감독은 시스템의 옷을 갈아입힌다. 한 명의 고대 공격수를 막기 위해 세 명의 연대 수비진이 머무르다 보니 잉여 자원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여기에 수비 한 명을 줄이고 양 윙백을 내려 플랫 4를 꾸리고, 김성중 대신 김철연을 내세워 공격 자원을 하나 더 늘리는 시도였다. 송수영 아래 김철연-최치원-김현수가 배치돼 활발한 스위칭을 가져가고, 후방에서 넘어오는 패스의 생존 확률을 높여 상대 골문까지 도달하는 가능성을 늘리고자 했을 것이다.

전반전 동안 좁은 공간 내에서 티격태격하던 '김도혁vs안진범'은 조금 더 넓은 범위에서 맞붙게 된다. 고대의 공격진이 결정적 찬스를 잡기 위해선 안진범의 발끝에서 터지는 패스 줄기가 필요했고, 서동원 감독은 이 선수에게 중앙-측면 가리지 않는 왕성한 스위칭을 요구했다. 이에 맞선 김도혁은 "볼 안 차도 되니까 안진범만 맨투맨으로 틀어막아."라고 지시한 신재흠 감독의 지시를 따랐다. 여기에 중원 파트너 최영훈의 적극적이고도 터프한 수비 역할에 고대의 공격 열쇠는 계속 묶여갔다. 무릎을 다친 뒤 불어난 체중이 꾸준한 실전 경기로 많이 줄었고, 경기 전 잠깐 만난 자리에서도 "몸이 많이 좋아졌다."던 안진범이었으나, 연대의 수비 블럭 속에서 청소년 대표 시절 때만큼의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고대로선 굉장히 아쉬울 부분이었다.

고대가 이 부분에서 생각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때, 최영훈에게 중원을 맡기고 슬금슬금 전진하던 김도혁이 승리의 기운을 연대 쪽으로 끌어온다. 지난 5월 FA컵 32강 당시 서울-연세대의 경기 중 후반 막판 서울을 놀라게 한 중거리 슈팅을 두 방이나 쏜 선수가 바로 김도혁. 결국 헤딩 세컨볼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왼발에 제대로 얹힌 슈팅으로 선제골까지 뽑아냈다. 골을 내준 고대는 동점골을 위해 앞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 뒷공간은 발 빠른 최치원, 김철연 같은 자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다. 수비적 임무에 충실하면서 슈팅 및 전진 패스로 공격 몫까지 풀어낸 김도혁 덕분에 연대는 송수영의 추가골까지 누리게 된다. 이를 두고 신재흠 감독은 "안진범을 봉쇄한 김도혁의 완승"이었다며 흐뭇해했다.


경기 후 "정말 기쁘다. 정기전을 앞두고 준비한 만큼의 결과를 얻어 좋았다."던 김도혁과 연대의 기세가 정기전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지난해 정기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 승리를 이끈 안진범, 그리고 최근 4년 연속 정기전 승리를 가져간 고대가 이번 패배를 설욕할 수 있을까. 두 팀은 이제 한 달 반 뒤인 9월 중순, 양교의 정기전에서 다시 맞붙게 된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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