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인터뷰 "대표팀 감독, 발가벗겨져 허허벌판에"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3-07-02 17:51 | 최종수정 2013-07-03 07:58


최강희 전북 감독. 전주=하성룡 기자

"사실 대표팀 감독은 발가벗겨져 허허벌판에 내놓아져 있는 것이다."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말 속에 뼈가 있었다. 1년 6개월간 '시한부' A대표팀 감독이 겪어야 했던 현실이다. 전북의 사령탑으로 복귀한 최강희 감독을 1일 만났다. 최 감독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표팀의 논란에 대해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인터뷰 중 그는 이렇게 말했다. "허정무 부회장이 대표팀 감독 1년 하면 10년을 늙는다고 하는데 공감한다."

박주영-에닝요 사건은 협회가 초래한 일

최강희호 1년 6개월간 대부분의 논란은 선수 선발 과정에서 비롯됐다. 지난 3월, 카타르전을 앞두고 최 감독은 '박주영 카드'를 접었다. 이를 두고 '박주영이 인터뷰를 안해 최 감독이 미워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최 감독이 감춰왔던 속 마음을 꺼냈다. "나는 박주영에게 인터뷰를 시킨 적이 없다." '병역 기피' 논란에 대한 박주영의 입장 표명이 없자 최 감독이 '박주영에게 인터뷰를 권했다'고 알려졌던 소문과는 정반대의 얘기였다. 최 감독은 "협회 관계자가 '박주영이 인터뷰를 하려 한다'길래 내가 '나쁘지 않다'고 얘기했다. 이미 (박주영과) 합의가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외부에서는 내가 인터뷰 하라고 했는데 박주영이 안했고, 그 일로 미워해서 안뽑은 걸로 알고 있더라. 런던에서 박주영과 만나 '대표팀에서 필요하다'라고 얘기했다. 나는 선수를 미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에닝요 특별 귀화도 협회의 요청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쿠웨이트전을 앞두고 "최 감독, 라돈치치 귀화시키는게 어때"라는 협회 수뇌부의 권유가 있었다고 했다. 최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라돈치치가 대표팀과 맞지 않다고 않다'고 얘기했더니 에닝요의 귀화를 고민해보라고 했다.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쿠웨이트전이 끝나고 얘기하자'고 답했다." 쿠웨이트전 이후 협회가 다시 에닝요의 특별 귀화를 추진했고,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를 두고 최 감독은 "협회가 먼저 보도자료를 냈으면 여론이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박주영-에닝요 일이 협회에서 가장 잘못한 일이다"라며 "나는 가만히 있다가 바보가 됐다"고 했다. 에닝요의 특별 귀화 문제는 결국 협회 수뇌부의 뜻이 관철된 결과다. 그러나 최 감독은 "솔직히 에닝요 귀화 얘기가 나왔을 때 솔깃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당시 대표팀 상황이 그랬단다. "이청용이 장기 부상 중이었다. 윙포워드로 4명을 뽑아야 했는데 이근호 한 명 밖에 없었다. 나중에 모든 것을 정리해보니, 대표팀 감독은 허허 벌판에 발가벗겨져 내놓아져 있던 것이었다." 논란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던 최 감독은 담담했다. "전혀 나하고 상관없이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것들이 대표팀 감독의 힘든 부분이고 숙명이다. 그런걸 받아들일 수 있어야 대표팀 감독을 할 수 있다."


내 스타일을 잃다

마지막 3연전은 졸전의 연속이었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역사를 이뤄냈지만 이란전 패배로 분위기가 탈락 이상으로 침울했다. 최 감독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도 소위 '뻥 축구'라고 불리던 경기력이었다. "매경기 벼랑끝 승부를 펼쳐야 했다. 원래 레바논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머지 2연전에서 부진을 씻을 수 있도록 미드필드를 역삼각형으로 놓고 공격적으로 재미있는 경기를 하려 했다. 그러나 레바논전을 비기고 쫓기는 승부를 하게 되고, 김남일의 부상까지 겹치면서 뻥축구가 나오게 됐다." 최 감독은 책임을 통감했다. "어느날, 대표팀 소집을 해도 내가 잔소리를 하게 되고 미팅도 많아졌다. 레바논전 이후 쫓기는 승부 속에 한 경기에 급급하다보니 내가 전혀 다른 스타일이 됐다." 지금은 모든 상처를 잊었다. 전임 감독으로 한국 축구의 발전을 바랄 뿐이다. "'땜빵'인 시한부 감독은 더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지지만 결과를 보면 한국 축구의 큰 손실이다. 여러가지 문제들을 홍명보 감독이 흔쾌하게 날려주고 좋은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선수들에게 향했다. "감독 때문에 선수들이 애를 많이 썼다. 이란전 끝나고 뜨거운 포옹을 한다든지 고마운 마음을 표현 못했다. 선수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전주=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