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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스물한 살 유고 청년 라데 보그다노비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내전 중인 고국에서 축구 인생을 살아가긴 힘들었다.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 해외 진출을 고민했다. 극동의 포항이라는 구단에서 입단테스트 제의를 받았다. 6번에 달하는 연습경기를 거치며 혹독한 테스트를 받았다. 군말 할 처지가 아니었다. 포항의 붉은 유니폼을 입는 순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국 프로축구 30년사에 레전드 중 하나로 꼽히는 '라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화려한 발재간과 역동적인 세리머니로 팬들을 즐겁게 했던 라데는 더 이상 없다. 내전의 상처를 걷어내고 독립한 고향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에서 숙박, 스포츠클럽을 운영하는 어엿한 사업가가 됐다. 하지만 라데는 20년 전 포항의 추억을 잊지 않고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에 '포스코 아레나'라는 이름을 붙여 활동하고 있다. 창단 40주년 행사를 기획한 포항 구단의 요청에 26시간의 비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26일 대구FC와의 2013년 K-리그 클래식 13라운드가 펼쳐진 포항 스틸야드로 달려왔다. 이유는 뭘까. "나는 단순히 포항에서 외국인 선수로만 뛰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축구와는 다른 인생을 배운 곳이 포항이다." 회사 이름을 '포스코'로 지은 이유를 들으면 그의 한국사랑을 더 이해할 수 있다. "과거를 돌아봤을 때 (포항에서 뛰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고 삶의 질이 좋았던 때였다. 사무실에서도 한국에서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이날 스틸야드에는 라데 외에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일만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회택 이흥실 최순호 김기동 등 포항 유니폼을 입은 '레전드'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의 풍파 속에 얼굴에는 주름이 생겼고, 날렵했던 몸매도 오간데 없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모두가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 검붉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지난 시즌 직후 전북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유럽 연수를 다녀온 이흥실 전 감독은 "내가 뛸 당시엔 스틸야드가 막 완공됐다. 원정팀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서면 신기해서 제대로 공격을 못했다"며 "앞으로도 프로축구가 발전해 이런 기념행사가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포항=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