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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야속했다. 지긋지긋한 위기였다.
절박한 심경 그리고 믿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최 감독은 선수들 앞에서 표정관리를 했다. 절박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마지막까지 왔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는 경기 전 "절박하다"고 솔직한 감정을 토로했다. 이날 오전부터 서울에는 비가 내렸다. '비와 최용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빗속 혈투에서 추억이 많다. 2011년 4월 30일 감독 대행으로 데뷔전을 치렀을 때도 비가 내렸다. 상대는 제주였다. 당시 서울은 정규리그 7경기까지 1승3무3패로 부진, 황보관 감독이 경질되는 아픔을 겪었다. 90분내내 비를 맞은 최 감독은 흠뻑 젖었고, '사령탑 데뷔전'에서 2대1로 역전승을 거뒀다. 최 감독은 "비가 오면 지지는 않았다. 감은 좋다"고 했다.
이타적인 플레이에 미소
전반 19분 몰리나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골잡이 데얀이 두 번째 어시스트를 했다. 욕심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동료를 선택했다. 최 감독은 "우리가 하나가 되면 두려운 상대는 없다. 그게 우리 팀의 강점이다. 주문을 많이했다. 선수들이 반응했다. 부담없이 정상적인 우리 경기를 하면 늘 원하는 결과를 갖고 올 수 있다"고 기뻐했다.
데얀은 전반 27분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을 세 번째 골로 연결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키커는 데얀이 아니다. 서울의 페널티킥 1번 키커는 김진규다. 두 골 차로 앞선 상황이라 데얀에게 맡겼다. 그는 골키퍼를 우롱하는 파넨카킥으로 해결했다. 최 감독은 "한 골 승부였다면 김진규가 1순위다. 하지만 여유가 있었다. 데얀이 그 골로 인해 자신감을 찾았을 것"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3-0, 최 감독은 올시즌 처음으로 경기 중 여유를 느꼈단다. 그러나 머릿속은 쉼없이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빠른 교체타이밍 그리고 전술 실험
후반은 전술 실험장이었다. 몇 차례의 경기에서 교체 카드와 타이밍에 실수가 있었다. 그는 경기 전 교체 타이밍을 이미 언급했다. 더 이상 실수가 없을 것이라는 고백이었다. 후반 11분 최현태에 이어 17분 한태유를 투입했다. 올시즌 처음으로 스리백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태유 김진규 김주영이 스리백을 형성했다. 통상 스리백은 수비형 전술이다. 양쪽 윙백이 수비에 가담하면 5명이 수비라인에 포진하게 된다. 최 감독은 틀을 깼다. 3명이 역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 그 외 선수들은 공격에 집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 감독은 "작년에 참 많이 들었던 것이 강력한 수비다. 그러나 올해 수비가 약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자존심 많이 상했다. 우리 수비는 절대로 약하지 않다"며 "상대 높이에 부담을 받지 않을까 싶어 한태유를 투입, 중앙수비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무실점을 통해서 선수들의 자신감을 회복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선수들 자체가 스리백에 적합한 선수들이다. 공격적인 축구로 생각한다. 시간은 좀 더 필요하다.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후반 37분 차두리의 크로스를 몰리나가 헤딩골로 연결, 피날레를 장식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첫 승이었다. 최 감독은 "오늘 경기로 분위기를 반전했다. 지난해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어떻게 도망가는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올해는 차분한 마음으로 어떻게 쫓아가는지를 보여주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90분 동안 최 감독의 심경은 시시각각 변했다. 절박→희망→미소→자신감이 교차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