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 상쾌 통쾌했던 차두리-최용수의 '입담 열전'

기사입력 2013-03-27 16:47 | 최종수정 2013-03-28 08:09

[포토] 최용수

유쾌하고 상쾌했다. 오가는 답변 속에는 통쾌함까지 있었다.

27일 열린 차두리의 서울 입단 기자회견장. '33세 K-리그 클래식 새내기'의 첫 출발을 기념하는 자리에는 웃음이 넘쳐났다. 차두리는 입담으로부터 웃음이 시작됐다. 방송 해설로 익숙한 차범근 해설위원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듣기 편한 음성인데다 조리있게 말을 한다. 또 할 말은 다 하는 스타일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시원한 답변이 오갔다. 그런데 기자회견이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4강 신화의 꿈을 함께 이뤄냈던 최용수 서울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방장'과 '방졸'관계였다. 돌고 도는 인연이다. 11년의 세월이 흐른 뒤, '형'은 '감독님'이 됐다. 누구보다 친한 두 사람이기에 오고가는 대화 속에 유쾌했던 과거와 현재가 공존했다.

'꽃을 든 남자'

차두리의 기자회견은 '꽃다발을 든 남자' 최 감독의 환대로 시작됐다. 최 감독은 부끄러운듯 꽃다발을 건네면서 "아휴~"를 연발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 최 감독에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나보다. 그러나 최 감독은 차두리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편한 포즈를 취하더니 다시 차두리의 민머리로 손을 옮겼다. 정성스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서 제자가 된 동생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감독님"

처음 분위기는 아주 훈훈했다. 차두리는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호칭부터 정리했다. "얼굴을 보면 형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제는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감독님이라는 말이 아직 어색하다. 빨리 적응해야 할 것 같다." 최 감독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차두리의 립서비스가 계속 이어졌다. '서울의 강점'을 묻는 질문에 "최대 강점은 굉장히 좋은 감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용병술이 서울을 강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최 감독은 "푸하하"라며 크게 웃었다. 그러나 이어진 차두리의 진심에 웃음이 멈췄다. 차두리는 "사실은 K-리그 경기를 많이 보지 못했다. 강점을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다"고 고백했다.

[포토] 최용수-차두리, 룸메이트에서 감독,선수로!
"내가 감독이다"


훈훈한 분위기는 한 질문을 기점으로 새국면을 맞이했다. '공격수 차두리'였다. 차두리는 '공격수로 나설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아주 단호하게 "생각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최 감독의 눈빛이 변했다. 갑자기 마이크를 잡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최 감독은 "두리가 자기 생각을 모두 말할 수 있는 것은 독일 문화 때문인 것 같다. 감독은 나다. 경기에 출전하고 싶어할 텐데 내가 골키퍼 빼고 전 포지션에 투입하면 다 해야 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눈치가 참 빨라, 센스가 있네"

기자회견의 또 다른 주제는 정대세였다. 정대세와 차두리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최 감독은 심기가 불편했다. 다른 주제의 질문이 나오자 "또 정대세 질문인줄 알았는데 다행이다"면서 웃었다. 차두리가 최 감독의 마음을 읽었다. 차두리는 '슈퍼매치에 출전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재치있게 넘겼다. "당장 이번 주에 있는 경남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내가 경기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을 할 것이다. 수원전까지 몸 상태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감독님이 나를 투입해야 경기를 뛰는 것이다. 선수들과 똘똘 뭉쳐서 훈련하겠다. 수원전 출전과 정대세 얘기는 나중에 경기 나가면 해달라." 최 감독의 귀를 번쩍이게 한 답변이었다. 최 감독은 곧바로 "두리가 센스가 있어. 눈치가 참 빨라. 어떻게 한국에서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는지 벌써 알아낸 것 같다"면서 엄지를 치켜 세웠다.

[포토] 최용수 감독
차두리의 복수

당하고만 있을 차두리가 아니었다. '형 최용수와 감독 최용수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서부터 복수가 시작됐다. 그는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 얼굴 표정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않다. 한 때 같은 방을 쓸때 내가 항상 감독님의 컨디션을 맞춰줬다. 하지만 감독님으로 함께 훈련한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다. 카리스마는 여전한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감독님인지는 시즌이 끝난 뒤에 다시 질문해달라. 그때 내가 모든 것을 다 말하겠다. 상세히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한 시즌 내내 모든 것을 파헤치겠다는 의지가 눈빛에서 드러났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최 감독의 반격이 시작됐다. 기념 포즈로 포옹을 해달라는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난 집에 껴안을 여자가 2명이나 있다"며 끝까지 차두리를 품에서 멀리했다.


구리=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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